국제회의 명칭 문제 놓고도 `티격태격'

한국은행과 금융감독 당국이 또다시 해묵은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가계부채 등 현안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가 하면 두 기관장이 동시에 참석한 국제회의 명칭 문제를 놓고도 티격태격한다.

한국은행은 지난 15일 `한은 김중수 총재가 참석한 EMEAP 총재회의 명칭 등과 관련하여'라는 다소 생경한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15일부터 사흘간 일본에서 열린 EMEAP에는 김중수 총재와 함께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했다.

한은은 EMEAP(Executives' Meeting of East Asia and Pacific Central Bank)의 명칭을 놓고 시비를 걸었다.

권혁세 원장이 `동아시아ㆍ대양주 금융기관장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한다는 금감원의 발표를 문제 삼은 것이다.

정확한 명칭은 `동아시아ㆍ대양주 금융감독기관장 및 중앙은행총재 회의'가 아니라 `동아시아ㆍ태평양 중앙은행 임원회의'라고 한은은 지적했다.

이런 배경에는 금감원 발표문에 중앙은행 총재 표기가 권 원장보다 뒷순위로 밀린 것이 못마땅하다는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회의 공식명칭은 한은 주장이 맞지만 주최 측이 의전을 고려해 금감원에 보낸 초청장에는 `EMEAP Head(헤드) And Governors(거버너) Meeting'이라고 돼 있다.

`헤드'가 감독기관장을 뜻하는 만큼 금감원이 사용한 한글표기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한은이 이처럼 사소한 문제를 놓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두 기관 간 구원(舊怨) 때문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하나였던 두 기관은 1999년 한은과 은행감독원으로 분리됐고 이후 은감원은 보험ㆍ증권감독원과 합쳐 금감원으로 커졌다.

두 기관의 갈등은 2011년 8월에 시작됐다.

당시 이뤄진 한국은행법 개정 과정에서 양측이 치열한 기 싸움을 벌였다.

당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물론, 권혁세 원장도 한은에 금융기관 조사권을 부여하는 법 개정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개정안은 2011년 6월 국회 본회의 공식 안건으로 상정됐으나 감독 당국의 격한 반대로 표결 직전에 안건에서 제외됐다.

이후 두 기관은 가계부채 문제를 놓고도 충돌했다.

포문은 김석동 위원장이 먼저 열었다.

"가계부채 증가속도를 제어하려면 총유동성 관리가 적절해야 한다"며 한은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권혁세 원장도 "가계부채 문제에 한은이 역할을 해야 한다"며 한은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러자 한은측에선 "감독당국이 가계부채 책임을 한은에 전가한다"고 비난했다.

급기야 한은은 이례적으로 `중앙은행의 금융안정 목적에 관한 고찰' 보고서를 냈다.

금융감독 당국에 대한 일종의 반격이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현행법상 한은뿐만 아니라 기재부, 금융위 등이 금융안정 업무를 맡고 있지만 기관 간 금융안정에 대한 책임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은법 개정 이후 한은과 감독 당국의 공동검사에서도 알력 조짐이 나타났다.

"한은이 떼를 써 공동검사권을 줬지만 경험도 없는 한은이 뭘 하겠느냐"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면 한은은 "금융안정ㆍ공동검사 보고서를 제대로 쓸 능력도 없는 주제에…"라며 맞받아치기도 했다.

언제 한솥밥을 먹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갈등이 악화하는 형국이다.

가계부채를 비롯한 금융안정 현안에 머리를 맞대야 할 두 기관의 볼썽사나운 감정싸움을 바라보는 금융권의 시선은 싸늘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17일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안정에 적잖은 부담을 주는 만큼 기재부ㆍ금융위ㆍ금감원 등 관계기관의 책임과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 기관 간 불필요한 다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강원 기자 gija00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