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어느날, 두 젊은이가 유명 산업디자이너 카림 라시드를 찾아갔다. 라시드는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미국 휴고와 프랑스 겐조 향수병 등 유명 제품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청년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탁월한 세척 효과가 있는 친환경 세제를 개발했습니다. 포장용기 디자인을 맡아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청년들의 요구는 또 있었다. “죄송하지만 창업한 지 얼마 안 돼 디자인 비용을 지급할 형편은 안 됩니다. 돈을 버는 대로 수익을 나눠 드리겠습니다.” 세계적 디자이너에게 터무니없는 부탁을 한 것이다.

그러나 라시드는 이들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당돌한 청년들의 열정이 그를 움직였다. “친환경 사업을 통해 지구를 구하고 싶다”는 말이 그를 감동시킨 것. 이들은 에릭 라이언(39)과 애덤 로리(39). 미국 친환경 세제업체 메소드의 창업자들이다.


◆생활의 발견

1990년대까지 미국 세제시장은 프록터앤드갬블(P&G) 등 대형 브랜드가 장악했다. 2001년 창업한 메소드는 이 구도를 흔들어 놓았다. 돌풍을 일으키며 세제업계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는 별명을 얻었다.

창업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2000년 어느날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라이언과 로리는 다른 세 친구와 함께 사는 집을 청소하고 있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다섯 청년이 사는 집은 엉망이었다. 두 청년은 세제를 사기 위해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그러나 마땅한 세제를 찾지 못했다. 환경과학을 전공한 로리 때문이었다. 그는 인기있는 대형 생활용품업체 제품을 가리키며 “환경과 인체에 해로운 독성 물질이 잔뜩 들어 있어”라고 말했다. 그는 제품 성분을 한눈에 꿰고 있었다. 이에 대해 라이언은 “그렇지만 친환경 제품들은 세정 효과가 너무 떨어져서 청소하기가 힘들어”라고 말했다. ‘세정 효과가 뛰어나면서도 독성 물질이 없는 세제는 왜 없을까.’ 두 청년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환경 세제를 만들기로 했다.

창업을 결심한 두 사람은 저축한 돈을 내놨다. 신용카드 대출도 받았다. 가족들로부터 투자도 받았다. 자금을 마련한 이들은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목표는 뚜렷했다. ‘안전한 천연 원료를 사용하면서도 세정 효과는 일반 세정제보다 뛰어난 제품.’

실패를 거듭한 끝에 2001년 첫 제품인 클리닝 스프레이를 출시했다. 처음에는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몇 개 주의 식료품 체인점에만 내다팔았다. 대신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홍보했다. 입소문 효과를 노린 것이다. 판매량은 점점 늘었다. 판매량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자 미국 2위 대형 유통업체 타깃을 찾아갔다. 라시드를 설득한 방식으로 타깃의 제품 담당자를 설득했다. 전국 판매망을 확보한 것이다.

메소드 세탁세제는 P&G의 세제 ‘타이드’ 등보다 가격이 10% 이상 비쌌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인기가 높아졌다. 매출은 쑥쑥 늘었다. 2002년 16만달러, 2003년 340만달러, 2005년 4500만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2009년에는 매출 1억달러를 넘어섰다.

◆먹어도 괜찮은 세제, 꽃병 같은 디자인

제품 판매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라이언은 한 여성 고객의 전화를 받았다. 여성은 제품 포장에 적힌 라이언의 휴대폰 번호를 보고 전화한 것이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아들이 메소드 욕실 청소 세제를 마셨다”며 울먹였다. 여성이 다른 전화로 독극물 관리센터와도 통화 중인 것이 라이언에게 들렸다. 그는 라이언에게 “세제에 어떤 원료가 첨가돼 있느냐”고 다그쳤다. 라이언은 침착하게 답했다. “진정하세요. 아드님에게 물 한 잔만 먹이세요. 해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성은 경황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다.

라이언은 당시 상황에 대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뿌듯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메소드 세제 원료의 95%가 코코넛오일 등 천연 제품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정력이 뛰어나고 안전한 친환경 세제를 만들겠다던 청년들이 이뤄낸 성과였다. 소문이 퍼져나갔다. 소비자들은 메소드를 찾기 시작했다.

라시드가 디자인한 용기는 이런 품질을 뒷받침했다. 가치있는 제품을 가치있는 용기에 담은 것.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세제용기에서 탈피해 향수병 또는 꽃병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다. 세제용기를 집을 꾸미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2007년 라시드가 디자인한 물방울 모양의 식기용 세제 용기는 큰 인기를 모으며 메소드의 상징적인 제품으로 자리잡았다.

메소드의 브랜드 철학도 제품에 대한 철학과 맥을 같이한다. 브랜드 철학은 ‘인류의 건강을 개선하는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 혁명’이다. 슬로건은 ‘더러움에 맞서는 사람들(People Against Dirty)’이다. 여기서 더러움은 더러워진 옷과 식기뿐 아니라 지구 환경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인류와 생태계를 위협하는 오염 물질에 맞서겠다는 뜻이다. 확고한 브랜드 철학은 메소드가 P&G, 클로락스 등 골리앗 생활용품업체들과 싸울 수 있는 힘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런 브랜드 철학은 제품과 서비스는 물론 기업문화 전반에 스며 있다.


◆브랜드 철학 통했다

브랜드 철학을 만든 주인공은 라이언이다. 그는 미국 최대 의류업체 갭 등에서 경력을 쌓은 브랜딩 전문가다. 브랜드 철학이 갖고 있는 힘에 대해 그는 “더 큰 이상을 세우면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며 “사람들의 삶을 개선한다고 생각하면 신이 나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일하러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사명감과 이상이 일을 더 즐겁게 만들고, 더 많은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이라는 얘기다.

이 같은 철학은 용기의 소재와 디자인은 물론 제품 유통에도 적용됐다. 용기는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했다. 뚜껑은 펌프 방식으로 설계했다. 적정 사용량을 펌프 횟수로 명시해 세제 남용을 막기 위한 것이다. 북미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70% 이상은 친환경연료인 바이오디젤 트럭을 이용해 수송된다. 메소드는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미국 환경청의 ‘환경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Environment)’ 인증도 받았다.

메소드는 브랜드 철학에 맞는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신중을 기한다. 사원 모집과 채용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공석이 생기면 채용팀뿐 아니라 여러 부서에서 7~10명을 선정해 면접팀을 구성한다. 지원자는 자신이 근무할 부서의 상사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부서의 사람과 7~10회 개인면접과 집단면접을 치른다. 라이언은 “모든 것의 출발점은 누구를 채용하느냐는 것”이라며 “한 사람만 잘못 채용해도 조직에 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