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자산 기준 미국 1위 은행으로 자리 잡은 JP모건체이스는 ‘리스크 관리의 신(神)’이라고 불려왔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 문제가 됐던 부채담보부증권(CDO)을 모두 팔아치우면서 다른 은행들과 달리 대규모 손실을 피했다. 조기 경보 시스템을 통해 철저히 리스크를 관리해온 덕분이었다. 이런 JP모건마저 파생상품 거래로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면서 월스트리트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어이없는 자충수”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10일(현지시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파생상품에 잘못 투자해 지난 6주간 20억달러의 거래 손실이 발생했으며 이에 따라 회사 전체의 2분기 손실이 10억달러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이먼은 “이는 우리가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이 아니다”고 강조했지만 ‘월스트리트의 왕’이라고 불려온 그의 평판은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현지 언론들이 지난달 최고투자책임부서 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했음에도 다이먼은 ‘찻잔 속의 태풍’이라며 애써 경고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들은 JP모건 런던 지점의 트레이더인 브루노 익실이 너무 큰 규모로 베팅해 JP모건뿐 아니라 전체 금융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다시 꺾인 경기가 화근

‘런던고래’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익실은 JP모건의 리스크 관리를 담당해온 최고투자책임실 소속이다. 최고투자책임실은 파생상품을 통해 은행의 리스크를 관리해왔다. 이들이 가장 활발하게 사용해온 헤지 수단은 ‘신용부도스와프(CDS)’로 기업이나 국가의 부도 위험을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든 파생금융상품이다.

투자자들은 CDS에 투자함으로써 부도에 따른 원금 손실을 막을 수 있다. JP모건은 CDS를 활용해 경기가 지속적으로 회복할 것에 베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기 회복 속도가 둔화된 데다 유럽 재정위기 우려가 다시 불거지면서 시장이 예상과 반대로 움직여 대규모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볼커룰 규제 살아나나

JP모건의 이번 손실은 미국 금융규제 법안인 도드-프랭크법의 일부인 ‘볼커룰’의 시행을 앞당기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폴 볼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설계한 ‘볼커룰’은 투자은행(IB)들이 파생상품 등을 사고파는 이른바 ‘자기자본거래’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당초 올여름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JP모건체이스를 비롯한 대형 IB들의 강력한 반대로 시행이 2년 유예됐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볼커룰을 조기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칼 레빈 상원 의원은 이날 성명을 통해 “JP모건의 발표는 은행들이 ‘헤지’라고 부르는 것이 종종 위험한 거래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면서 “납세자들이 고위험 투자 손실을 메우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규제 당국이 더욱 강력하고 효과적인 기준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이날 크레디트스위스, 모건스탠리, UBS 등 글로벌 17개 은행에 대해 신용등급을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 CDS (신용부도스와프)

Credit Default Swap. 기업 파산 등의 ‘위험’을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든 파생금융상품. 거래 당사자 중 한쪽이 상대방에게 연간 수수료를 주는 대신 특정 기업이 부도나거나 채무를 상환하지 못할 때는 상대방으로부터 보상을 받는다. 부도 위험이 여러 투자자들에게 분산되는 이점이 있다. JP모건의 블라이드 마스터스 글로벌상품 부문 대표가 1997년 개발해 전 세계를 상대로 판매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