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에서 ‘친서민’으로 돌아선 이명박 정부의 모드 전환은 꽤나 드라마틱하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임기 중에 이런 대척점을 오간 적이 없었다. 물론 친기업과 친서민의 개념 자체는 상호 배타적이라고 할 수 없다. 현대 경제학에 기업과 서민이 제로섬 게임을 한다는 이론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두 개념을 놓고 상반된 정치적 구호와 정책적 수사가 난무하면서 친기업과 친서민은 분열적이고 대립적인 가치체계로 자리잡아버렸다.

‘상생’과 ‘공정’이라는 구호 역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이후 무력화된 ‘747 공약’의 대체 카드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국면 전환용 정치적 선택에 가깝다. 그렇게 해서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부자와 서민,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갈라졌고 대기업은 필연적으로 서민과 중소기업의 반대쪽 지점에 서게 됐다.

새로운 바늘과 실

청와대와 경제부처 당국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봤다. “어떤 연유로 대기업들이 ‘반(反)상생’과 ‘불(不)공정’의 타깃이 됐느냐”고. 대답은 조금씩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근저에 이명박 대통령의 배신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 집권 초 저금리·저세율에 고환율정책까지 얹어 ‘전폭적으로’ 밀어줬는데도 돌아온 것은 투자 및 고용 부진에 중소기업 사업영역과 골목상권에 대한 침탈이었다는 얘기다. 대기업들이 위기 극복의 과실을 독식하면서 ‘트리클 다운(trickle down)’을 외면하고 있다는 섭섭함도 곁들였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명박 정부가 또 다른 모드 전환을 시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업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세칭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비판이나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라는 명목으로 강제되는 사업영역 축소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성장 잠재력이다. 누가 어떻게 성장을 견인하느냐의 화두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놓고 ‘3.5%(한국은행)냐, 3.7%(기획재정부)냐’를 다투는 도토리 키재기식 논란을 넘어서는 거시적 경제운용과 미시적 산업전략을 요한다. 상생과 공정이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가꿔나가는 축이라면, 경제성장과 산업경쟁력은 그 생태계의 질적 고양을 가늠하는 바늘과 실이다. 이런 점에서 반상생과 불공정이 대기업의 악덕으로 간단히 치부된 것은 유감이다.

친서민의 조건

잘 나가는 한국 대기업들도 언젠가는 어려움에 처할 날이 올 것이다. ‘전·차(삼성전자·현대자동차)군단’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한국은 세계 1위 LCD(액정표시장치) 제조국이지만 딱 2년간 지속된 판매가격 하락에 대·중소기업을 막론하고 모두 감원·감산 위기에 내몰려 있다. 앞서 불황의 늪에 빠졌던 건설·조선·태양광 업계는 지리한 불황과 사망의 터널에 갇혀 있다. 당하는 기업들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예고없이 한순간에 들이닥친 위기다.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거시 지표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모두 이들 업종의 투자와 수출 부진이 도사리고 있다.

이 정부의 747 공약 폐기가 정치적 면죄부는 될지 몰라도, 저성장까지 면책시켜주지는 않을 게다. 수천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0.1%포인트의 성장이라도 목을 매고 달라붙어야 한다. 상생과 공정의 정치적 레토릭에 함몰돼 있는 이 순간에 이미 어느 누군가의 발밑이 아래로 꺼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이 오면 ‘트리클 다운’도 친서민도 없다. 도대체 누가 친기업과 친서민을 갈라놓았나.

조일훈 경제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