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투수'로 나선 히라이 가즈오 사장 "소니 도전정신 부족했다"
벼랑에 선 소니를 구하기 위해 긴급 투입된 히라이 가즈오 소니 사장(52). 지난 1일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뒤 그의 머릿속은 온통 ‘한국 생각’뿐이라고 했다. 삼성, LG전자와의 글로벌 전쟁에서 이길 ‘묘책’을 찾는 게 무엇보다 급하다고 털어놨다. 12일 도쿄 소니 본사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 한국 언론을 초청하느냐도 그의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고 회사 관계자들이 전했다.

‘전자왕국’으로 군림해온 소니가 CEO 취임 간담회에 한국 기자들을 참석시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내부에서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지만 히라이 사장은 한국 언론을 초대하기로 결심했다. 소니 위기론이 팽배해 있는 한국에 소니의 부활을 알리려는 게 그의 속내라고 회사 관계자들은 전했다.

◆소니 CEO의 반성문

'구원투수'로 나선 히라이 가즈오 사장 "소니 도전정신 부족했다"
히라이 사장이 이날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지난해 5000억엔 이상의 적자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고백이었다. “소니는 더 이상 여유가 없고 지금이 아니면 바뀔 수가 없다”는 절박함도 감추지 않았다.

“삼성같은 스피드가 부족하고 도전 정신이 없다”는 지적도 받아들였다. 그는 “소니는 그동안 결단이 늦었고 방향이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경영 환경 변화에 빨리 대응하기 위해 “CEO로서 판단 스피드를 올리고 직속 경영 부문도 늘리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또 “연구·개발(R&D) 조직을 강화하고 직원들과 소통을 강화해 도전정신을 살리겠다”고 말했다.

소니의 약점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미래 비전도 공개했다. ‘하나의 소니’를 모토로 소니의 핵심인 전자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게 골자다. 골칫 덩어리인 TV 부문이 속해 있는 전자 사업을 살려 ‘전자 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정공법을 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소니 내에서 비주류라 할 수 있는 음악과 게임 분야에서 성장한 그인 만큼 소프트웨어 중심의 목표를 얘기할 것이라는 주변의 관측을 뒤집었다.

그는 “취임 이후 소니의 부활을 원하는 분들의 많은 응원을 받았다”며 “소니를 반드시 바꾸겠다”고 했다. “카메라와 게임, 모바일 등을 3대 핵심사업으로 키우고 8년째 적자인 TV 사업을 2013년에 흑자로 돌릴 것”이라며 “이를 통해 2014년에 그룹 전체에서 8조5000억엔의 매출과 5%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올려 강한 소니로 부활하겠다”고 강조했다.

신흥시장을 개척하고 신규 사업을 육성하겠다는 포부도 소개했다. 소니는 삼성처럼 의료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키우는 한편 풀 HD의 4배 이상의 해상도를 가진 ‘4K’ 보급에 앞장서기로 했다. 히라이 사장은 “카메라 이미지 센서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인수·합병(M&A)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히라이 사장의 과제는

히라이 사장은 1946년 소니를 창업한 이부키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를 제외하면 역대 최연소 CEO다. 50대의 젊은 경영자인 만큼 내부에서 거는 기대가 크다.

성공 DNA를 갖고 있는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히라이 사장은 1984년 CBS소니(현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해 11년간 음악 분야에서 일하며 소니가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강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1995년 게임을 담당하는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플레이스테이션(PS)을 만들어 ‘PS의 아버지’로 불리는 구타라기 겐 SCE 회장의 신뢰를 얻었다. 능력을 인정받아 2006년 SCE 사장에 올랐다.

물론 한계도 갖고 있다. 히라이 사장은 소니에서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속한다. 전자회사인 소니에서 한 번도 전자 부문에서 일해보지 않았다. 2005년 외국인으로 첫 소니 CEO가 된 하워드 스트링거의 눈에 들면서 뒤늦게 두각을 나타냈을 뿐이다.

기술을 중시하는 일본 전자 회사들의 전형적인 경영자 코스라고 할 수 있는 와세다대나 게이오대 출신도 아니다. 히라오 사장은 일본 경영자 중 특이하게 도쿄에 있는 국제기독교대를 나왔다.

히라이 사장의 과제는 소니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의 시너지를 내야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TV 부문의 8년 적자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전체 이사 15명 가운데 13명이 비전문가인 사외이사인 데다 스트링거 회장이 6월부터 이사회 의장을 맡는 구조에서 제 목소리를 내며 소니의 부활을 이끌어야 한다.

이토키 기미히로 소니코리아 대표는 “히라이 사장은 자신의 한계와 소니의 현재 문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소니의 기술력과 풍부한 소프트웨어 인프라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적임자”라고 말했다.

도쿄=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