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 10일 앞두고…이호진 태광 회장 사임
태광그룹은 이호진 회장(사진)과 오용일 부회장, 박명석 대한화섬 사장 등 최고 경영진 3명이 횡령혐의 등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고 10일 발표했다. 태광그룹 측은 “회장단이 그룹 문제로 재판을 받는 등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책임을 지고 9일 일체의 지위에서 사임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대표이사를 포함해 티브로드홀딩스, 티알엠 등 계열사 사내이사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정치권에서 재벌개혁론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 총수가 법적 책임을 이유로 퇴진한 사례가 나와 파장이 주목된다.

◆46개 계열사 경영 차질 불가피

이호진 회장은 지난해 1월 회삿돈 400억원 횡령과 골프연습장 헐값 매도 등 그룹에 975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구속 기속됐다. 1년여의 수감 생활과 지병이 겹쳐 건강이 크게 악화됐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4월 간암수술을 받은 이후 호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며 “절대 안정이 필요한 상태로 업무를 볼 수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선고 10일 앞두고…이호진 태광 회장 사임
이 회장 등 핵심 경영진의 사임으로 46개 계열사를 거느린 태광그룹의 경영 차질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그룹 내에서 맡은 직책만 태광산업, 대한화섬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등 8개에 이른다. 오 부회장도 태광산업뿐 아니라 티브로드홀딩스, 큐릭스홀딩스 등 대표이사 직책만 5개를 갖고 있었다.

당장 3월 국내 처음 탄소섬유 상업생산을 시작하는 태광산업은 증설계획이 불투명해졌다. 케이블TV 업계의 M&A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사업 또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일단 이상훈 태광산업 사장이 경영을 총괄한다”며 “후임 회장단 구성을 서둘러 경영공백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검찰로부터 징역 7년, 벌금 70억원을 구형받았다. 오는 21일 선고공판을 10여일 앞두고 사임해 법원의 선처를 겨냥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호진 회장 선고기일 21일, 한화 김승연 회장은 23일 선고

이호진 회장 외에도 공판을 앞두고 있는 대기업 총수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공통된 혐의는 배임이나 횡령 등으로, 여론의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이 회장의 선고 공판 이틀 뒤인 23일에는 김승연 한화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에 대한 선고공판이 예정돼 있다. 김 회장은 불구속 기소됐지만, 검찰은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징역 9년,벌금 1500억원을 구형했다. 태광그룹 이 회장의 선고 결과에 관심이 모이는 것은 향후 대기업 총수 재판의 잣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외에도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공판이 16일 열린다.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속 기소된 최재원 부회장 형제의 첫 공판도 다음달 초로 예정돼 있다.

윤정현/김동욱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