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정전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취임한 지 8개월 만에 물러났다.

최 장관의 사임은 정전 사태가 전력 수급에 대한 예측 실패와 관계 당국의 총체적 대응 부실 때문이었다는 내용의 정부 합동점검반의 보고서가 26일 발표되면서 전력 수급을 총괄하는 부처 수장으로서 사퇴 압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정전 사태에 대한 장관 책임론은 이미 사태 초반부터 제기됐다. 예고 없는 단전과 수많은 피해로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은 사퇴 공세를 폈고 정전 이튿날 이명박 대통령이 한전을 찾아가 책임소재를 따지겠다고 밝히면서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 장관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퇴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사태를 수습한 뒤 물러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비쳤다.

일각에서는 국정감사와 피해보상 접수가 마무리되는 내달 초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정부합동점검반에서 정전 원인을 밝히면서 관계자 문책 방침을 재확인하자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행시 22회로 공직에 입문한 최 장관이 자신의 역할에 책임지고 물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당시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을 맡았던 그는 원화 값이 뛰자 막대한 자금을 외환시장에 쏟아부으며 방어에 나섰고, 2005년 외환시장 개입 과정에서 발생한 천문학적 규모의 손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환율정책 라인에서 물러났다.

이후 세계은행 상임이사 등을 거쳐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재정부 1차관으로 복귀했지만, 다시 고환율 정책 논란에 발목을 잡혀 4개월 만에 물러났다.

이어 필리핀 대사로 자리를 옮겼다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부활했고 지난 1월 지경부 장관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강한 소신과 특유의 업무 추진력 때문에 '최틀러'(최중경+히틀러)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는 지경부 장관 취임 이후에도 정유사와 주유소를 상대로 기름값 인하를 압박하는 등 공격적인 업무 추진 방식을 고수했다.

또 '초과이익공유제'를 비롯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대책을 놓고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과 대립하는 등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최 장관 특유의 강성 언행과 이로 인한 정치권과의 마찰이 경질론을 부채질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경닷컴 경제팀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