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등 하이닉스반도체 채권단이 STX의 중도 포기에 관계없이 지분매각 일정을 예정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시장에선 채권단이 SK텔레콤의 단독입찰을 허용하겠다는 의사결정을 내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외환은행은 20일 "매각주관사와 다른 채권기관과 협의를 거쳐 다음달 24일로 예정된 본 입찰을 포함한 매각 일정을 당초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이르면 이번주 중 입찰안내서를 발송하고 내달 말까지 본입찰 실시,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방침이다.

◆채권단,SKT 단독입찰 허용

지난 19일 STX가 하이닉스 인수 중도 포기를 선언한 직후 시장에선 SK텔레콤 단독입찰과 추가 입찰,유찰 등 세 가지 가능성이 제기됐다. 증권가와 업계에선 'SK텔레콤의 단독입찰이 가능하다''STX의 중도 포기로 이번 딜은 유찰돼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SK텔레콤의 단독입찰을 허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가운데 일각에선 "본입찰을 실시하기 이전에 STX가 발을 뺐기 때문에 유효경쟁이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나왔다. 유찰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채권단이 이날 예정대로 매각 일정을 추진키로 결정함에 따라 사실상 SK텔레콤의 단독입찰을 허용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물론 본입찰 과정에서 채권단이 제시한 기준가격과 SK텔레콤이 내놓는 인수희망가격 사이에 차이가 클 경우 매각 딜이 무산될 수도 있지만,현실적으로는 SK텔레콤이 하이닉스를 가져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채권단 내에서 유효경쟁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일부의 지적을 받아들이기보다 이번 기회에 하이닉스 매각작업을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매각 방침 변화 있을까

채권단 결정으로 관심은 '구주 매각과 신주 발행' 방침이 바뀔 것인가에 쏠린다. 과거 두 차례 공개매각 때 채권단은 구주(외환은행 등 9개 채권기관이 보유한 15% 지분) 매각만 고수해 왔으나 이번엔 인수전 흥행을 감안해 '최대 14%의 신주발행을 병행한다'는 쪽으로 방침을 바꿨다. 그런데 STX가 도중에 빠지면서 굳이 흥행을 고려한 '당근'을 제시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이에 대해 채권단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상 20% 이상의 지분을 유지해야 대주주 경영권을 인정해주는데 채권단이 보유한 구주는 15%밖에 안 된다"며 "신주발행은 당근이 아닌 필수요건"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채권단이 신주발행 계획을 바꾸면 SK텔레콤을 인수전에 참여시킬 수 없다는 설명이다. 외환은행도 이날 구주매각과 신주발행을 병행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신주발행 가격 논란 불거질 수도

채권단이 신주발행을 병행한 SK텔레콤의 단독입찰을 허용하기로 했지만 향후 지분매각 과정에서 논란이 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SK텔레콤이 단독 우선협상대상자가 되면,제3자 배정 방식으로 유상증자가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SK텔레콤은 신주인수 가격을 제시하고 채권단이 기준가격에 부합하면 본 매매계약을 맺게 된다. 관건은 신주 인수가격으로 얼마가 적정한가이다. 보통 신주발행은 시가를 반영하거나 할인하는 식으로 진행되지만,이번 딜은 할증발행 방식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한 매각 자문사 관계자는 "신주발행 가격이 너무 높으면 SK텔레콤이 입찰에 불참할 가능성이 높고,반대로 낮으면 특혜시비나 하이닉스 이사회의 배임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태명/장창민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