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뭡니까. 회사 소개자료도 아니고…." 지난달 말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를 위해 실사에 참여한 SK와 STX그룹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매각주관사 측이 하이닉스에 대한 각종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데이터룸'에 접근하기 위한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주면서,5000만원 이상의 수수료를 요구해서다. 통상 국내 기업 M&A(인수 · 합병) 과정에서 데이터룸을 보기 위한 수수료는 500만~1000만원 선이다.

SK와 STX 실사 담당 직원들은 데이터룸을 본 뒤 더 실망했다. 뚜껑을 열고 보니 '속빈 강정'이었기 때문이다. 알고 싶은 자료는 없고 이미 알고 있는 자료만 가득했다는 얘기다. 후보기업 관계자는 "처음 실사에 들어갔을 때 공시를 통해 발표된 자료만 가득했다"며 "기본적인 중 · 장기 사업계획조차 없었다"고 전했다.

하이닉스의 몸값은 대략 3조원대.인수 후보기업들은 데이터룸에 있는 실사자료를 토대로 인수 가격을 뽑아낼 작정이었다. 인수가격을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공식 자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참다못한 SK와 STX 측은 거세게 항의했다. 이달 초부터 크레디트스위스(CS)와 산업은행,우리투자증권 등 매각주관사 측에 추가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제공된 실사 자료만으로는 도저히 인수 가격을 산정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인수 후보기업들은 우선 하이닉스의 △중 · 장기 투자계획 △반도체 생산장비 업그레이드 세부 현황 △중 · 장기 예상수익 △미국 램버스와의 특허소송 관련 진행사항 및 전망 등에 대한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주관사 측도 인수 후보기업들의 반발이 거세지자,일부 받아들여 지난주부터 정보 공개 수위를 조금씩 높인 것으로 전해졌다. 채권단 관계자는 "인수 후보기업들이 요청하는 정보를 대부분 공개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에 후보기업들의 요청에 충실하게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논란거리는 또 있다. 인수 후보기업들의 추가 질문 수가 실사기간 동안 총 500건으로 제한됐다는 점이다. 매각주관사 측이 정한 기준이다. 하이닉스 실무자 10여명에 대한 개별 인터뷰 시간도 2시간으로 제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 후보기업 관계자는 "하이닉스 인수전은 빅딜인데다 반도체 사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정보 공개 요청 건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질문 기회가 500건으로 제한돼 있어 아껴서 질문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실사기간 동안 충분히 자료를 확인하고 실무진을 인터뷰해야 인수 전략을 짜고 가격을 산정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소연했다.

하이닉스 인수전 초기 후보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 발벗고 나섰던 채권단의 말과 태도가 점점 바뀌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권단 보유 주식(구주) 인수에 대한 가산점 부여,신주 발행 비율,외국자본 의결권 제한 등을 둘러싼 잡음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채권단이 하이닉스 매각 과정에서 일관성 있는 기준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닉스 인수전이 진행되면서 여러 논란을 겪어온 터에 부실한 실사자료에 대한 문제까지 도마 위에 오르면 채권단으로선 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SK와 STX는 지난달 말부터 6주간 일정으로 실사를 벌이고 있다. 채권단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위한 평가기준을 마련한 뒤 다음달 본입찰을 할 예정이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