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KOTRA 사무실.작년 5월 설치한 한국투자기업지원센터는 요즘 한국 기업인들로 북새통이다. 다음달 1일 한 ·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와 함께 현지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이태식 센터장은 "3년6개월간 근무하면서 이렇게 수출 기업들이 몰려들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폴란드는 인구 3400만명으로 중 · 동부 유럽에서 가장 유망한 시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국내 타이어업체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EU에 타이어를 수출하는 업체 가운데 한국 기업만이 유일하게 FTA 효과를 누릴 수 있는 터라 경쟁사에 비해 관세 인하 효과를 보게 생겼다. 업계 관계자는 "앉은 자리에서 벌게 된 이익을 제품가에 반영해야 할지,아니면 마케팅 비용으로 돌리는 것이 나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수출 기업들이 유럽 공략 전략 짜기에 한창이다. 가격 경쟁력이 생긴 만큼 이번 기회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유럽 시장을 뚫겠다는 태세다. 현지에 공장을 두고 있는 대기업들도 현지 생산능력과 EU 역내에 있는 지사 숫자를 늘리기로 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유럽 시장을 뚫어라

가장 활발하게 뛰고 있는 업종은 자동차 부품 분야다. 4.5% 관세가 발효 즉시 없어지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는 작년 말 8명으로 통상지원팀을 꾸리는 등 FTA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해놨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생산 공장을 갖추고 있지만 수출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폴란드에도 별도 판매 법인을 세울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원산지 인정 비율 등 각종 제도들도 철저히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이어업체들도 호재를 만났다. 헝가리에서 연간 800만개를 생산하고 있는 한국타이어는 향후 생산 규모를 1200만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유럽에 생산공장이 없는 금호타이어도 가격 경쟁력이 생기면서 수출이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는 폴란드에 8000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현대 · 기아차가 해외에서 선전한 덕분에 한국의 자동차 부품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섬유업체들은 중국,대만과의 가격 경쟁에서 승기를 잡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합성섬유업체인 휴비스 관계자는 "4% 관세가 사라지게 됐다"며 "섬유 시장은 몇 센트 단위로 오더를 따는 초박빙의 세계이기 때문에 4% 가격 인하 효과가 발생하면 대만 업체에 비해 확실히 비교 우위를 갖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효성도 지난해 11월 한 · EU TFT를 구성,유럽 시장에 맞는 전산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준비 작업에 나섰다.

◆동유럽 진출 활발

전문가들은 EU 시장이 더 열린다고 하더라도 나라별로 사정이 다른 만큼 전략적 대응 방안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박재규 KOTRA 파리센터장은 "현지 바이어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여러 번 했는데 FTA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자체를 모르는 기업도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기업들은 동유럽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GS칼텍스는 폴란드 헝가리를 후보지로 삼고 플라스틱 사출 원료 제조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호남석유화학도 폴란드 진출을 준비 중이다. 투자 규모는 2000만~3000만달러가량이다.

대기업들은 FTA 발효를 기회로 여기면서도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지에 생산 공장이 있어 관세 인하 효과가 별로 없는 데다 FTA 수혜를 강조하다가 현지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박동휘/최진석/이유정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