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결과 부산저축은행그룹 대주주와 경영진의 '모럴 해저드'가 국내 1위 저축은행 그룹(총자산 9조9088억원 · 전국 저축은행 총자산 대비 12%)을 몰락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페이퍼컴퍼니 120개(사업장 80여곳)에 4조6000억원을 부실대출해줬고,2조4500억원을 분식회계했다. '묻지마 대출'까지 합치면 5조원 이상의 서민 예금이 대주주 개인의 '쌈짓돈'처럼 운용돼 온 것이다.

◆페이퍼컴퍼니 4조6000억원 부실대출

검찰 수사 결과 부산저축은행그룹이 영업정지된 핵심 이유는 '바지사장'을 내세운 페이퍼컴퍼니(특수목적회사 · SPC) 120개가 들어간 사업장 80여곳에 대출금 4조5942억원을 몰아줬기 때문이었다. 이는 그룹 전체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잔액의 87.7%에 달한다.

검찰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그룹이 2006~2010년 바지사장 120명을 동원한 것은 대주주 대출 및 상호저축은행의 직접 사업을 금지한 법규를 피해나가기 위해서였다. 초기에는 대주주의 친인척과 지인을 바지사장으로 이용했으나 나중에는 아예 '브로커'를 끼고 수를 늘려나갔다. 사업장은 총 80여곳으로 대부분이 건설 사업(50곳)이었으나 해외 해수욕장 개발,선박,모래 사업,태양에너지 개발,운전학원까지 포함돼 있었다. 페이퍼컴퍼니 유지 비용만 연간 130억~150억원이었다.

우병우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은 "부산저축은행그룹의 실체는 금융기관이 아니라 전국 최대 규모의 시행사였다"며 "엄격한 대출 심사 대신 고위험 · 고수익을 좇는 투기사업자에 가까웠다"고 밝혔다.

사업 성공시 수익금 중 30~100%가 페이퍼컴퍼니의 실질적 주인인 대주주에게 돌아가는 구조였다. 페이퍼컴퍼니가 관여한 건설 사업이 모두 성공했다면 박연호 회장 등은 단번에 아파트 단지만 22개,골프장 6개를 거느린 '사업가'가 될 수 있었다.

박 회장과 김양 부회장,김민영 대표이사 등 대주주와 주요 임원들은 매일 임원회의를 열고 이들 페이퍼컴퍼니에 대출을 얼마나 해줄 것인지 결정해서 각 계열 은행에 지시했다. 그러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은행 직원 16명이 페이퍼컴퍼니 120개를 관리하다 보니 99개는 인 · 허가조차 받지 못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시공에 들어갔던 사업장도 지금은 사실상 정지된 상태다.

◆분식회계로 BIS 비율까지 조작

페이퍼컴퍼니가 들어간 사업장이 부실화되자 대주주와 경영진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에 급급해졌다. 이들은 친인척과 지인들의 명의로 7500억원의 무담보 신용대출을 해주고,이를 페이퍼컴퍼니에 돌려 부실대출금을 상환하거나 연체 이자를 갚는 데 썼다.

또한 2008~2010년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총 2조4533억원을 분식회계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였다고 검찰은 전했다. 분식회계 결과 2008년 7월~2009년 6월 그룹의 재무상태는 순손실 1조1135억원에서 순이익 1조1320억원으로,2009년 7월~2010년 6월에는 순손실 1조6872억원에서 순이익 1조3213억원으로 부풀려졌다.

이들은 결산기를 앞두고 '분식회계 시뮬레이션'을 한 다음 페이퍼컴퍼니에 신규 대출을 해주고 이를 금융자문 수수료로 돌려받아 수익으로 계상하기도 했다. 조작된 BIS 비율로 이들은 수신액을 올리면서 후순위채를 판매했다. 허위 재무제표로 1000억원을 유상증자하기도 했다. 무담보 대출 등으로 5060억원의 부당대출을 하기도 했다.

우 기획관은 "7조원의 여신 중 5조3400억원을 대주주 등에게 대출해줬기 때문에 일반 대출은 1조6600억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향후 수사 계획에 대해 우 기획관은 "페이퍼컴퍼니를 전수조사해 남은 재산은 환수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영업정지 전날 특혜 인출 수사를 위해 이날 검사 2명을 포함한 수사진 40여명을 부산 및 대전으로 내려 보내 예금인출 내역,CCTV,통화 내역을 분석하며 구체적인 불법 행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