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상품거래 업체인 글렌코어가 작년 러시아 정부가 밀 · 옥수수 수출 중단을 결정하기 직전 곡물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투기적 거래를 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5일 보도했다. 국제 곡물 가격 급등 배후에 투기세력이 있다는 지적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내달 홍콩과 런던에 동시 상장할 글렌코어의 상장 주관사 가운데 하나인 UBS 자료에서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FT가 전했다. 글렌코어가 지난해 밀과 옥수수 선물을 자기자본으로 매수한 후 공개적으로 러시아 정부에 수출금지를 촉구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 회사의 러시아 곡물 담당 책임자인 유리 오그네프는 작년 8월3일 "모스크바(러시아 정부)는 모든 곡물 수출을 중단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는 이틀 후인 8월5일 수출금지 조치를 내렸고 국제 밀 가격은 그 이후 이틀 동안 15%나 폭등했다. 옥수수 선물 가격도 작년 9월 이후 최근까지 두 배 이상 급등했다. UBS는 이 자료에서 "글렌코어 곡물 담당자들은 러시아 측으로부터 러시아 가뭄 등 곡물 생산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는 정보를 제때 얻었다"고 덧붙였다.

글렌코어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상품거래 회사다. 러시아 곡물은 글렌코어가 가장 많이 거래하고 있고 카길 등 미국 회사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지난해 글렌코어는 곡물 사업에서 6억5900만달러의 경상이익을 올렸다. 2009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이번 곡물 투기거래가 드러남에 따라 글렌코어는 지난해 3분기부터 계속된 국제 곡물가 급등의 배후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글렌코어 측은 "곡물 가격 상승으로 우리는 더 비싸게 곡물을 사서 다른 국가에 공급할 수밖에 없었다"며 "러시아의 수출금지는 영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