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제일제당은 세계 처음으로 친환경(발효) 공법을 적용한 메치오닌(사료용 아미노산) 생산시설을 빠르면 올 상반기 중 말레이시아에서 착공한다. 2005년 바이오 공법을 통한 메치오닌 개발에 착수한 지 6년 만이다. 이 회사 바이오연구소는 석유화학 공법으로 만들던 메치오닌 제품이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인기를 유지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원료를 원당과 포도당으로 바꾼 뒤 미생물 공법을 적용한 연구개발(R&D)을 시작했다.

1년 이상 이어진 연구는 실패였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2007년 중간 미생물체를 효소로 전환하는 방법을 발견,전 세계 대부분의 바이오 기업들이 포기한 친환경 공법 개발에 성공했다. CJ는 2013년까지 연간 8만t의 제품을 생산,35억달러에 달하는 메치오닌 시장의 10%를 초반에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핵산 세계 1위,바이오 매출 1조원 돌파,바이오 영업이익 증가율 59%.' 국내에선 식품 1위업체로만 알려진 CJ제일제당이 지난해 해외에서 올린 발효 바이오(미생물을 이용해 동물에 필요한 아미노산 등을 만들어내는 것) 부문 성적표다. 이런 성과는 작년 한 해에만 바이오 부문에서 103건의 국내외 특허를 출원하는 등 적극적인 연구개발에 나선 결과다.

이 회사는 새로운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로 부상한 바이오 부문을 세계 1위로 키운 뒤 살 빠지는 감미료 등 식품 신소재와 국내 1위 가공식품 등을 앞세워 해외시장 공략을 가속화한다는 전략이다.

◆세계 1위 꿈꾸는 '발효 바이오'

CJ제일제당은 조미료 원료인 핵산 부문에선 이미 세계 1위에 올랐다. 2006년 일본 식품업체 아지노모토를 따라잡은 뒤 작년까지 1위를 지켰다. 지난해 중국 랴오청에 새 공장을 지었으며,올해와 내년엔 인도네시아 생산시설을 확충해 지난해 32%를 기록한 시장점유율을 2년 뒤엔 42%로 높일 예정이다.

25억달러 시장 규모의 사료용 아미노산인 라이신도 2013년 1위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미국에 생산시설을 새로 짓고,중국 내 연산능력 10만t을 추가하기로 했다. 김철하 CJ제일제당 바이오 담당 부사장은 "지난해 20% 선이었던 시장점유율이 2년 뒤엔 30%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료용 아미노산인 스레오닌과 트립토판에 대한 투자도 늘릴 예정이다. 이 회사는 이 같은 투자를 통해 지난해 1조700억원이었던 바이오 매출을 2013년 2조원으로 늘리고,영업이익 4000억원을 거둔다는 계획이다.

◆'비밀 병기'로 떠오른 식품 신소재

50년 이상 CJ제일제당의 캐시카우는 설탕과 밀가루 사업이었다. 그러나 설탕과 밀가루의 사용량이 정체를 보이는 상황에서 국제 곡물가격 급등,정부의 가격통제 등이 겹치면서 사업 안정성을 위협받았다. '한물 갔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외부 평가와 달리 이 회사는 식품소재 부문에서 '히든 카드'를 준비 중이다. 식품 신소재로 불리는 고부가가치 기능성 감미료,쌀 미강 단백질 등이 그것이다. 이들 제품은 연구실을 떠나 대량 생산 단계로 접어들었다. 각종 가공식품에 첨가될 쌀 미강 단백질은 지난해 말 중국에서 양산체제를 갖추고 올해 본격 생산에 들어간다. 쌀 미강은 현미를 깎아 백미로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쌀겨와 쌀눈의 혼합물질로,도정한 지 하루만 지나면 식품으로 쓸 수 없을 정도로 변질된다.

이재호 CJ제일제당 소재담당 부사장은 "계속된 실험 끝에 미강에서 단백질을 성질 변화 없이 빼내는 데 성공했다"며 "기존 콩 단백질과 달리 소화 흡수가 잘되고 알레르기 문제가 없어 식품업체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코코넛셸 자일로스도 버려지던 코코넛 껍데기를 이용해 천연 감미료 자일리톨 원료를 뽑아내는 것으로,이달 말부터 필리핀 공장에서 본격 생산한다. 오는 6월 출시될 예정인 혈당을 조절해주는 감미료 '타가토스'는 물론 살을 빼는 데 도움을 주는 감미료 등도 차세대 히트상품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줄잇는 히트 상품…공식 1위만 24개

'다시다,햇반,백설 올리고당,하선정 액젓.' CJ제일제당의 주요 히트상품들이다. 지난해 공식적인 시장조사를 통한 1위 브랜드만 24개에 달한다. 맛밤 쁘띠젤 등 시장을 거의 독식하고 있어 별도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품목까지 더하면 1위 제품은 30여개에 이른다.

'대박' 품목도 수두룩하다. 간판 조미료 제품인 다시다는 지난해 2600억여원의 매출을 올렸다. 해찬들 고추장도 1700억여원가량 팔렸다. 삼호어묵과 백설만두는 각각 850억여원과 800억여원어치가 판매됐다.

가공식품은 해외시장을 본격적으로 뚫기 시작했다. 2007년 중국에 합작회사를 세워 진출한 두부사업은 3년 만인 지난해 베이징 두부시장의 70%를 차지했다. 미국시장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2005년과 2006년 각각 인수한 식품업체 애니천과 옴니를 통해 현지 생산 및 판매에 나선 이후 이들 두 회사는 매년 40% 이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엔 중남미 교역중심지인 멕시코의 코스트코 32개 전 매장에 수출 전략상품인 햇반 양념장 등을 입점시키는 계약도 성사시켰다.

◆아시아 식품업계 최고 수준의 R&D 투자

가공식품 부문에서 히트 상품을 잇따라 쏟아내고,바이오 부문에서는 세계 선두권 진입을 눈앞에 두게 된 배경에는 CJ제일제당의 R&D 파워가 자리잡고 있다. 이 회사가 가동하고 있는 연구소는 모두 4곳.서울 가양동의 바이오연구소를 비롯해 식품연구소(서울 구로동),사료연구소(인천),제약연구소(이천) 등이다.

이들 연구소가 지금까지 확보한 국내외 특허건수만 7000여개에 이른다. 조미 소재인 핵산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리고 라이신 제품의 원가 경쟁력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높인 것도 뛰어난 균주를 개발한 뒤 수율(收率 · 원료 투입량 대비 양질의 완성품 생산비율)을 극대화한 연구개발 덕분이다.

이 회사는 R&D 경쟁력을 더 높이기 위해 투자를 대폭 늘릴 예정이다. 지난해 CJ제일제당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율은 2% 선이었다. 국내 식품업계의 평균(0.6%)에 비해선 상당히 높지만,일본의 아지노모토(2.6%)에 비해서는 뒤떨어진다. 김홍창 CJ제일제당 사장은 "세계 선두권 식품업계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능력이 필수"라며 "앞으로 2년 뒤 R&D 투자비율을 3%까지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방침에 따라 2009년 750억여원이던 연구개발 투자비를 지난해 950억여원으로 늘린 데 이어 올해는 1200억여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지난해 550여명이던 연구개발 인력도 올해는 800여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