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방만한 공기업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2008년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의 핵심은 민영화였다.

하지만 공기업 매각 입찰은 잇따라 유찰되고 있다. 시장 논리를 무시한 채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매각 공고'만 하면 경영평가 때 민영화 관련 점수를 잘 주고 있다.


◆공기업 매각 연이어 불발

지역난방공사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작년 말로 시한이 정해졌던 인천종합에너지 지분 50% 매각을 내년 초로 늦추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실시된 두 번의 입찰이 모두 유찰돼 매각을 계속 추진하기가 힘들어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역난방공사 관계자는 "팔리지 않는다고 헐값에 내놓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는 "송도국제도시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는 내년에는 매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산하의 인천논현 집단에너지도 지난달 2차 매각 입찰이 유찰로 끝나자 올해 다시 매각을 추진키로 일정을 바꿨다. 두 번 모두 입찰 가격이 최저 매각예정가격에 미달했다는 이유다. 시장에서는 1300억~1400억원을 적정가로 봤지만 팔겠다는 가격은 1800억원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골프장 인수를 검토했던 모 투자은행(IB) 임원은 "88CC의 경우 토지 등 부동산과 운영권을 나눠 파는 등 매각 방식이 좋지 않은 데다 가격 역시 시장 기대치와 1000억원 이상 차이가 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가격 책정부터 제대로 해야

작년 초까지는 공기업 민영화가 그래도 잘 진행된 편이었다. 농지개량(2009년 8월) 안산도시개발(2009년 10월) 한국자산신탁(2010년 3월)이 매각됐고,그랜드코리아레저(2009년 11월) 한국전력기술(2009년 12월) 지역난방공사(2010년 1월)는 상장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민영화 의지가 강했던 정권 초기에는 매각 가격이 시장에서 평가하는 것과 비슷하게 나온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안산도시개발은 인수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격을 제시했다는 평이다. 매각 주관사 신청을 받을 때부터 적정한 시장 가치를 조사했고,알짜 사업 부문을 떼어내지 않는 '통 매각' 방식으로 진행한 것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예비 입찰 때 40여곳이 대거 인수 의향을 밝혔고,최종 입찰에도 6곳이 참여했다. 최종 인수자는 삼천리로 결정됐다. 농지개량 한국자산신탁 등 다른 공기업들도 비슷한 과정으로 순조롭게 매각됐다.

◆민영화 평가관리 개선 필요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기관장 포함)을 평가하는 주요 항목인 리더십 · 책임경영,경영효율,주요사업 등에는 민영화 진척도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정해진 기한 내에 매각이 이뤄지지 않으면 감점을 받을 뿐이다.

하지만 공기업 매각이 지연되는 사정을 고려하기 때문에 민영화 절차만 진행하면 매각이 안 돼도 불이익이 없다는 것이 공기업들의 분위기다. 정부 스스로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이유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관계사 등 7곳의 민영화 계획을 보류했다. 재정부 공공정책국 관계자는 "공기업 매각 실패에는 금융 위기 등 외부 요인이 작용한 측면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공기업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도 문제다. 주관사 선정 등 민영화를 적극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 정부로부터 높은 평가 점수를 받고서는 정작 중요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는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기관장 임기 3년 안에 매각 기한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서두를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정영채 우리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는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에 집착해 매각 예정가격을 높게 잡으면 팔 수가 없다"며 "시장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청룡 삼일회계법인 전무는 "민영화 실적을 세세하게 평가해 인센티브를 주는 시스템이 절실하다"며 "유찰이 거듭돼도 높은 가격을 계속 고집하는 관행은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욱진/안대규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