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과 밀가루 업계가 정부의 압박에도 값을 올리겠다고 나섰다. 원당 소맥 등 국제 가격이 폭등해 적자가 나고 있어 더 이상은 원가압력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설탕과 밀가루를 재료로 쓰는 식품업체들도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어 연쇄적인 물가불안이 우려되고 있다.

◆원당 소맥 등 폭등세 지속

제당업체들이 설탕값 인상에 나선 것은 국제 원당가격 급등 탓이다. 원당값은 미국 뉴욕상품거래소(NYBOT-ICE)에서 21일(현지시간) 파운드당 33.02센트를 기록,올 들어 19.55% 올랐다. 33센트대는 1980년 이후 30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10센트대 초반이었던 지난해 초에 비해 200%가량 급등했다.

세계 최대 생산국인 브라질은 가뭄으로,한국 수요량의 70%를 공급하는 호주는 홍수를 겪는 등 주요 산지에 몰아닥친 이상 기후로 작황이 나빠진 데 따른 것이다. 이열근 제일제당 홍보부장은 "국제 원당가의 폭등세가 지속돼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제당업계의 제조원가 중 원당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한다.

밀가루 가격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밀값은 21일 부셸당 7.65달러에 거래돼 지난 한 달간 18.70%,올 들어 37.16% 급등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원당과 밀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커피 옥수수 귀리 대두 팜유 등 대부분 작황 악화로 올초에 비해 25~110% 올랐다. 현재의 국제 농산물 시장이 예전보다 더 불안한 이유다.

◆가공식품 줄줄이 오를 듯

설탕값이 오르자 식품업계는 인상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설탕은 대부분의 가공식품에 두루 쓰이는 기본 소재이다. 설탕은 지난 8월 초에도 8.3% 올랐다.

여기에 밀가루값까지 내년 초 15%가량 오르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식품업계의 주장이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설탕에 이어 밀가루값까지 오른다면 인상을 검토해야 할 제품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심 관계자는 "올 1월에 밀가루값이 내렸을 때 신라면을 750원에서 730원으로 내렸다"며 "밀가루값이 오르면 분명히 인상 요인은 있지만 지금은 뭐라 말할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제당업계는 식품업계가 인상을 검토하자 불편한 기색이다. 과자나 빵에서 설탕의 비중은 원가의 3~10%,판매가의 1~3%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최근 설탕,밀가루값 인상이 가시화되면서 콜라와 커피음료,일부 과자류는 이미 지난달에 3~33% 올랐다. 롯데칠성음료의 펩시콜라 1.5ℓ페트병의 동네슈퍼 공급가는 지난달 11일부터 1080원에서 1250원으로 15.3% 인상됐다.

◆인플레 기대심리 확산

물가상승 압력이 현실로 나타나자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매월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CSI)'에서 향후 물가를 전망하는 지수는 지난달 141로 연초에 비해 6포인트 올랐다. 기준치인 100을 넘으면 물가 상승을 예측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다.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11월에 3.2%로 전월보다는 0.2%포인트 하락했다. 하지만 이달 들어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과 내년 초 대학 등록금 인상 가능성 등 물가 불안 요인들이 불거지면서 상황이 반전될 개연성이 크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인플레 기대 심리가 빠르게 번질 경우 소비심리도 동반 위축돼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현석/정종태/심성미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