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분양된 '인천 검단 힐스테이트 5차'의 순위 내 청약률은 저조했다. 하지만 현대건설 분양팀은 느긋한 표정이다. 순위 내 당첨자를 대상으로 한 계약기간이 끝난 지난 9일 이후에도 청약통장을 활용하지 않는 이른바 무순위 청약자들의 계약이 매일 1~2건씩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분양된 대림산업의 '남대전 e편한세상'도 청약률과 초기 계약률은 낮았지만 총 713채로 구성된 이 아파트의 계약률은 이달 초 50% 선까지 치솟았다. 미분양이 적지 않은 지방 분양시장에서 이례적인 계약률이란 평가가 나올 정도다.

청약통장을 가능한 사용하지 않고 무순위로 신규분양 아파트를 계약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전셋값 상승에 따른 집값 상승을 기대한 추격 매수세에다 주택공급 부족 전망에 따른 불안심리가 더해진 때문으로 보인다.

◆커지는 불안심리로 계약 늘어

'집값이 다시 오르지 않겠느냐'는 심리가 미분양 아파트를 계약하는 추격 매수세로 나타나고 있다. 분양 초기에는 계약하지 않다가 분양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분양권이 거래되는 등 가격상승 조짐이 확인되면 계약에 나서는 경우다. 마치 주가 상승세가 확인된 뒤 주식을 매입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올해 계약추이를 뜯어보면 집값 상승 얘기가 나올 때마다 계약률이 올라갔다"며 "추격 매수세는 심리 탓이 커 보인다"고 분석했다. 통계로 나타나는 향후 주택수급 불일치 전망도 수요자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한다. 싱글족,자녀 없는 부부,노인인구의 증가로 올해 1715만여채인 가구수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게 통계청의 전망이다. 하지만 신규주택 공급은 뒷걸음질치고 있다.

당장 내년 입주물량부터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연평균 30만채 수준이었던 전국 입주물량이 내년에는 19만여채로 올해보다 35%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부동산 경기침체 등의 이유로 2008년 이후 예전만큼 새 아파트를 짓지 않고 있어서다.

◆미분양 아파트 선택기준은 '4P'

주변에 잔여세대가 남은 신규 아파트가 있다 해도 막상 계약도장을 꺼내기까지는 주저하게 마련이다.

이럴 때는 자신만의 선택 기준을 세우면 도움이 된다. 그 기준 가운데 하나가 '4P'다. 입지(Place) 생활편의(Promotion) 분양가 (Price) 상품(Product)을 뜻하는 영어단어의 앞글자를 따온 것이다. 아파트 분양마케팅의 기법이지만 수요자 입장에서도 유효한 분석틀이다.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입지 여건은 새로운 도로 지하철 등이 개통되는 경우다. 주변에 수립되는 개발계획도 집값 상승을 좌우한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실수요자보다 투자자들이 입지여건을 많이 따진다"며 "거론되는 개발계획을 국토해양부나 지자체에 확인한 후 계약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생활편의는 학교 병원 대형할인매장 관공서 등의 거리 정도 및 여건을 따져보는 것이다. 상품은 아파트의 실내평면이나 단지구성이 자신의 가족구성원이 생활하는 데 적합한지를 점검해보는 잣대다. 신규 아파트 매입에서 가장 먼저 따지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가격이다. 자금조달 여건은 신용도 가처분소득 등에 따라 누구나 다르게 마련이다. 다만 향후 집값 상승에 대한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면 대출 비중이 높아도 이른바 레버리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무순위 청약,'매력 덩어리'

청약통장이 없어도 3순위 접수는 가능하지만 당첨되면 재당첨 금지조항에 걸려 지역에 따라 3~5년까지 다른 아파트에 청약할 수 없다.

하지만 무순위는 청약통장을 쓰지 않아도 되고 재당첨 금지조항도 적용되지 않는다. 무주택 자격은 입주등기 전까지 유지된다.

수요자가 원하는 동과 층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무순위 청약의 장점으로 꼽힌다. 같은 단지에서도 로열동과 로열층의 시세는 달리 매겨지는 경우가 있다. 무순위자를 대상으로 동 · 호수를 추첨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빨리 모델하우스에 갈수록 선택권은 넓어진다.

분양조건 변경 등으로 미분양 아파트는 늦게 계약할수록 유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심리도 퍼져 있다. 하지만 기존 계약자와 신규 계약자 간 다른 분양조건을 문제삼아 법적분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아지자 일부 건설회사들은 기존 계약자까지 분양혜택을 주는 '계약조건 보장제'를 도입하고 있다.

한라건설의 '청주 용정지구 한라비발디', 두산건설의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 등이 그런 경우다. 한라건설 관계자는 "계약을 빨리 할수록 로열동 로열층을 선택할 수 있고 향후 분양 조건이 바뀌더라도 똑같은 혜택을 보게 된다"고 보장제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이유선 한경닷컴 기자 yu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