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설계한 신형 원자로 AP-1000입니다. 중국 원자력발전소에 들어가는 것인데 웨스팅하우스가 미국,일본 업체들을 모두 배제하고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에만 일감을 맡겼습니다. "이영동 두산중공업 원자력공장장은 두께 300㎜의 합금강(鋼)으로 만든 거대한 원통형 원자로 베셀을 가리키며 뿌듯해 했다.

#일본 도쿄전력 기술진들이 올 봄 신고리 3,4호기 원전을 방문했다. 한국의 원전 운영 능력을 '한 수 아래'라고만 보던 그들이 찾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전 이용률은 90%를 웃돈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게 한수원의 설명이다.

작년 말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이후 한국형 원전은 수많은 기회와 함께 더욱 격심해진 도전을 받게 됐다. 전문가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로 제조 능력,일본이 벤치마킹에 나설 정도의 안정적 원전 운영,단 한번도 공기(工期)를 어긴 적 없는 원전 시공 기술 등 한국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거센 도전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원조 미국을 사로잡은 기술

두산중공업은 최근 미국에서 발주한 신규 원전용 주기기 프로젝트 6건을 모두 수주했다. 주기기란 원자로,증기발생기 등 원전의 핵심 장비를 말한다. 30년 전인 1980년대 초만 해도 미국을 오가며 어깨 너머로 배웠던 기술을 이젠 원전 종주국 미국에 되팔고 있는 셈이다.

김승원 두산중공업 원자력생산 부문 상무는 "소재에서부터 제품까지 일괄적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두산중공업"이라고 말했다. 용광로에 쇳물을 부어서 직접 거대한 단조품(소재)을 만들고,수십년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용접 엔지니어들이 최종 제품을 생산해낸다는 설명이다. 일본만해도 소재와 최종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분리돼 있다. 도시바 등 일본의 원전 주기기 제조업체들은 JSW라는 대형 단조 회사에서 물건을 공급받는다. 프랑스 아레바도 최근에는 자국 소재 업체를 하청으로 삼았지만 생산 능력이 한정돼 있어 수요의 상당 부분을 여전히 JSW에 의존하고 있다. 김 상무는 "소재와 제품을 하나의 공장에서 만들면 발주회사가 원하는 날짜에 손쉽게 공급을 맞출 수 있고,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창원 두산중공업 원전 주기기 생산 공장은 요즘 100% 가동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1일까지 수주한 증기발생기가 총 22기에 달한다. 매년 5기씩 생산하는 원자로는 앞으로 5년치 일감이 꽉 차 있다. 2020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총 80기의 원전을 수주한다는 정부 목표에 맞춰 원전 주기기 생산 공장의 증축도 완료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1978년 고리 1호기의 상업 운용을 시작한 이래 한국은 거의 중단 없이 원전을 지어 왔다"며 "여기서 쌓은 노하우가 한국형 원전 산업의 경쟁력"이라고 진단했다. 이영동 공장장은 "세계적으로도 두산중공업만큼 다양한 원자로를 만들어 본 곳은 드물 것"이라며 "웨스팅하우스가 자신의 신형 원자로를 우리에게 맡긴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가 부러워하는 원전 운용 능력

원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에서도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원전 이용률은 91.7%로 세계 평균인 79.3%를 훨씬 웃돈다. 프랑스 전력공사인 EDF의 프랑수아 루슬리 명예회장이 "프랑스 원전 이용률이 하락하면서 대외 이미지를 추락시켰다"고 말할 정도로 원전 이용률은 원전 강국으로 가기 위한 토대다. 한수원에 따르면 원전 이용률이 1%포인트 높아지면 연간 약 600억원의 경제적 이익이 발생한다.

안정성도 한국형 원전의 장점 가운데 하나다. 원전의 운영관리 수준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인 호기당 고장 정지가 1 미만으로 '제로'에 가까울 정도다. 2008년 가동원전 20기에서 7건의 불시 정지가 발생,호기당 연 평균 불시 정지율은 0.35를 보였다. 작년엔 호기당 0.3건으로 더 낮아졌다. 원전의 불시 정지란 원전을 1년 동안 정상 운전하면서 기기 고장 또는 인적 요인에 의해 발전소가 불시에 정지한 건수를 말한다. 한수원 관계자는 "1990년대 이후부터 운영 경험과 기술을 축적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5%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원전 기술 독립 역시 조만간 완성될 전망이다. 1986년 당시 한필순 한국원자력연구소장이 웨스팅하우스에 연구진을 파견하면서 "기술 자립을 하지 못하면 외국 기술에 의존하는 '기술 식민지'가 된다. 기필코 설계 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한 지 20여년 만에 100% 기술 자립을 눈 앞에 두고 있다.

황주호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원전의 3대 핵심 기술인 설계 핵심코드,원자로 냉각재펌프(RCP),원전계측 제어시스템(MMIS)에서 아직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뉴텍(Nu-Tech) 2012'만 완료되면 핵심 기술에서도 독립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계 핵심코드는 2012년 10월,RCP는 같은 해 6월이 목표 시한이다. 지난 8월 말 현재 설계 핵심코드는 62.1%,RCP는 60.5%까지 개발했다.

차세대 한국형 원자로 APR+의 표준상세설계는 2012년 말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APR+는 1500㎿급으로 3세대 한국형 원전인 APR1400보다 용량이 100㎿ 크고 효율성과 안전성도 한 단계 높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지난 8월 말까지 개발 작업의 42.5%를 진행했다. 정부는 2022년 APR+의 상업운전을 시작, 2030년까지 건설할 10기의 원전에 이 모델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창원=박동휘/유승호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