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原電강국 코리아] (3) 中, 세계 최다 26기 건설 중…동남아 시장에선 한국 위협
중국 최대 원자로 제작 업체인 중국핵공업집단공사(CNNC)의 추젠강 부총경리는 지난 20일 베이징의 한 모임에서 "파키스탄에 1기가와트(GW)급 핵발전소를 수출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원전 사업을 이끄는 유력 인사 중 한 사람인 추 부총경리의 이 발언을 두고,원전 시장에서는 중국이 파키스탄을 발판으로 해외 원전 시장에 진출하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00년 파키스탄에서 300메가와트(㎿)급 차슈마 원전 1호기를 완공했으며,내년 초 2호기 가동을 앞두고 있다. 두 나라는 300㎿급 원전 2기를 추가로 건설하는 계약도 맺었다.

왕빙화 중국 국가핵전기술공사(SNPTC) 회장은 "중국은 2017년이면 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한국처럼 자체 기술로 국내 원전을 건설하고 해외 시장까지 본격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넓은 시장이 가장 큰 힘

중국과 인도가 세계 원전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대규모 원전을 잇따라 발주하며 해외 원전업계의 최대 수요처 역할만 해온 두 나라가 이젠 원전 시공 분야에서도 강자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원전 시장에서 중국과 인도 두 나라의 가장 큰 경쟁력으론 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그에 따른 막대한 전력 수요 등이 꼽힌다. 인도는 수도인 뉴델리조차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정전이 될 정도로 낙후된 전력 인프라를 개선해야 하며,중국도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고 75%에 달하는 화력발전의 비중을 낮추기 위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이같이 열악한 현실은 중국과 인도 양국이 원전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긍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한국이 지난 30여년간 지속적으로 원전을 건설하며 쌓아온 경험이 오늘날의 경쟁력을 만든 것처럼 안정적으로 국내 수요가 뒷받침돼야 기술 축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자체 원전을 개발하려던 나라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국 시장의 한계 때문에 포기한 경우가 많았지만 중국과 인도는 국내 수요가 탄탄하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26기의 원전을 건설 중이며,인도도 인도원자력공사(NPCIL)가 주축이 돼 6기를 건설하고 있다.

◆중국,원전에서도 G2 노린다

중국 정부는 독자 개발로 원전 수출 강국이 되겠다는 목표 아래 선진 기술 획득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3세대 모델인 AP1000을 개량해 CAP1000과 CAP1700 기술을 확보했으며,CNNC는 지난 7월 4세대 원자로 핵심 설비 실험에 성공했다. 중국광둥핵전집단공사(CGNPC)는 1000㎿급 원자로 시공 능력을 갖췄다.

수출 시장에서도 중국의 움직임은 무섭다. 한국이 유력한 수주 후보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는 태국에서도 중국은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김성우 한국전력 해외개발부 차장은 "이달 초 협상차 만난 태국 원전 관계자가 중국은 방콕에 사무실을 냈는데 한국도 계획이 있느냐고 물어 깜짝 놀랐다"며 "아직 제대로 된 모델도 없지만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에선 이미 영향력이 느껴질 정도"라고 전했다. 중국은 파키스탄에 이어 벨라루스와 아프리카 각국에 300㎿급 소형 원자로 수출도 타진하고 있다.

기자재 표준 제정 움직임도 활발하다. 류웨이레이 상하이핵전판공실 부주임은 "원전 설비 분야에서 중국 자체의 기술 표준을 세우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오늘날 미국과 함께 양대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이 원전 분야에서도 미국기계학회(ASME)와 별도의 표준을 만들어 G2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인도,50년 내다본 3단계 계획 추진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의 전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원전 건설에 팔을 걷어붙였다. 인도의 1인당 연간 전력 소비량은 612㎾h로 세계 평균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S K 말호트라 인도원자력위원회(DAE) 대변인은 "태양광발전은 화력에 비해 발전 단가가 4~5배 정도 비싸 경제성 측면에서 당장 도입하긴 힘들다"며 "현재로선 원전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향후 의존도를 40~45%까지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원전 시장을 무기로 해외 각국의 경쟁을 유도하는 한편 3단계 로드맵을 통해 독자 모델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전력난이 심각한 현 상황은 해외 기술 도입을 통해 해결하고, 토륨을 기반으로 한 자체 모델이 상용화되는 50년 뒤엔 원전 수출국이 돼 세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이다.

자동차 분야에서 타타,마힌드라&마힌드라 등 토종 기업들이 자리잡은 것처럼 원전 분야에서도 자생력을 갖추겠다는 복안이다. 말호트라 대변인은 "과거 2개 회사만 있던 자동차 시장에 외국 기업들이 들어오며 인도 자동차 산업이 크게 발전했다"며 "원전도 각국 업체들이 경쟁하면서 인도 기업들이 성장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과 경쟁자 양면의 얼굴

중국과 인도는 한국에는 거대 시장인 동시에 잠재 경쟁자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현재 9000㎿인 원전 설비용량을 2020년까지 7만㎿로 늘리겠다는 중국이나 4700㎿ 수준에서 10년 뒤엔 2만㎿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인도 양국 모두 큰 시장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렴한 노동력을 무기로 저가 공세를 펴는 무서운 경쟁자다.

한전의 중국 담당인 정흥규 차장은 "한국이 선진국 모델에 비해 20~30% 가격경쟁력이 있다면 중국은 거기서 20%가량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다"며 "중국의 등장으로 해외 시장에서 가격만으로 승부를 걸기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국내 전력난 해결이 급한 인도는 기자재업체들의 진출을 원하고 있다. 사미르 카나바르 언스트앤드영 이사는 "한국의 장비업체들이 조인트벤처를 세우는 방식으로 인도 시장에 진출한다면 인도의 싼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뭄바이/상하이=조재희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