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서 썩어버려 내다 팔 물량 거의 없어"

"배추값이 높다고 난리를 치지만 폭염과 잦은 비로 배추 재배농민이나 유통업자 모두 망했습니다"
시중의 배추값이 크게 올라 '배추'가 `금추'가 됐으나 재배농민들은 한 몫을 단단히 챙기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 하늘만 바라봐야 했던 한해였다.

평년처럼 심어놓은 배추를 고스란히 출하했다면 높은 시세 때문에 `떼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여름철 무더위와 잦은 비로 대부분 배추가 밭에서 썩어버려 출하할 물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하순부터 이달 초까지 여름 배추를 생산했던 대관령지역의 주민들은 최근 올해의 배추 출하를 모두 끝마치고 가을을 맞고 있다.

이들 대부분 올해가 배추를 키우는데 가장 힘겨웠던 해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봄철 건조한 시기에 배추를 어렵게 심어 살려놨으나 여름철 들어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배춧속 온도가 20도 이상 올라가면서 고갱이부터 썩어가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비까지 내려 더위를 어렵게 견뎌낸 배추의 품질이 크게 떨어졌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배추를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가격이 크게 올랐지만, 농민들이 손에 쥔 소득은 대략 지난해보다 1평(3.3㎡) 당 1천원 가량 오르는 데 그쳤다.

그나마 이득을 본 경우는 봄철에 유통업자들에게 사전에 포전매매한 경우이며, 조금 더 가격을 받고자 배추밭을 지키고 있던 농민들은 폭염과 장마로 앉아서 수천만원의 손해를 봐야 했다.

농민들로부터 밭떼기로 배추밭을 샀던 중간 유통업자들도 배추값 급등에 따른 이득을 크게 챙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수 중간 유통업자들이 농민들로부터 배추밭을 산 뒤 출하 때까지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을 부담했지만 폭염과 잦은 비로 배추가 밭에서 썩어버려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해 통상적으로 3만3천㎡(1만평)에 30대 분량의 배추를 출하하면 1억원 가량을 손에 쥐었지만 올해는 1~2대 분량밖에 건지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고 한 유통업자는 밝혔다.

고랭지 배추 재배지역인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유천2리 김석기 이장(52)은 "올해 시장에서 배추값이 높다고 난리지만 폭염과 잦은 비로 산지에서 배추가 썩어가면서 농민과 유통업자 모두 망했다고 봐야 한다"면서 "배추와 무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민감한 작목이라서 뾰족한 대책이 없다"라고 전했다.

그는 또 "언론에서 밭떼기 거래를 하는 유통업자들이 중간에서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것으로 보고 직거래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고령자가 대부분인 농촌의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중간업자라도 없으면 농사꾼이 시장에 내다 팔 방법이 거의 없다"며 "고랭지 채소가 날씨 등에 영향을 많이 받아 위험부담률도 더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춘천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dmz@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