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기준금리 변경시 어디까지 감안해야 할 것인가 하는 통화정책 포함 대상을 놓고 '그린스펀 독트린'과 '버냉키 독트린' 간 논쟁이 일고 있다.

기준금리 변경과 같은 통화정책은 원칙적으로 부동산 주식 등과 같은 자산시장 여건을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신념이다. '그린스펀 독트린'으로도 불리는 이 정책은 2000년대 초반 큰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지만 자산시장의 거품을 일으켜 2008년 하반기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를 낳게 한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위기를 풀어가는 벤 버냉키 FRB 의장은 통화정책 대상에 부동산 등 자산시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그렇게 추진하고 있다. 고수익을 목적으로 한 각종 파생상품 투자와 레버리지 투자로 실물경기와 자산가격이 따로 노는 정도가 심한 여건에서 통화정책은 자산시장을 반드시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버냉키 독트린'의 핵심이다.

주목되는 것은 각국의 통화정책이 '그린스펀 독트린'보다 '버냉키 독트린'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기준금리 인상의 논거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오쿤의 법칙(Okun's rule)'으로 볼 때 올 상반기 미국경제 성장률은 잠재수준을 웃돌 정도로 '인플레 갭'이 발생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한 부동산 시장 등을 감안해 정책금리인 연방기금금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현재의 금리 수준을 장기간 유지해 나가겠다는 것이 FRB의 입장이다.

올 상반기 실물경제 상황을 감안해 지급준비율 인상과 같은 강력한 긴축정책을 추진해 세계경기와 글로벌 증시에 부담을 줬던 중국 정부도 최근 들어 그 강도를 완화시킬 움직임이 감지된다. 이미 중국 경제정책 수장인 원자바오 총리는 향후 경기대책 추진시 침체된 부동산 시장 등을 감안할 뜻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금리인상에 앞장섰던 호주를 비롯한 신흥국들도 최근 들어서는 추가 금리인상에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환경 불확실성 등과 같은 이유가 있지만 신흥국 간에 '금리동결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경기에 앞서 먼저 둔화세를 보이는 자산시장 여건을 감안한 통화정책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중순 이후 경제지표가 부진한 가운데 미국 증시가 비교적 견조한 흐름이 유지되면서 '조심스러운 낙관론'이 월가를 중심으로 고개를 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산시장을 감안해 출구전략과 정책금리 인상에 신중을 기한다면 증시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화정책의 포함 대상을 놓고 벌이는 '그린스펀 독트린'과 '버냉키 독트린'의 논쟁은 지난 7월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부동산 시장은 침체를 보여 별도의 부동산 부양대책을 내놓은 한국 정책 당국자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