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유로존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유로존의 '태생적' 문제로 지적돼온 역내 불균형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유로존 경제의 핵심인 독일은 23년 만의 최대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로 대변되는 변방국가들은 전보다 뒤처진 성장세를 보였다.

◆'중국 스테로이드 주사' 맞은 독일

독일은 지난 2분기에 전 분기 대비 2.2%(전년 동기 대비로는 9%)의 GDP 증가율을 기록했다. 독일 분데스방크(중앙은행)는 최근 "독일의 2분기 수출이 급증하는 등 경기가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며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2%에서 3%로 상향 조정했다.

독일이 작은 경제 기적을 이룬 것은 유로화 약세가 수출 대국 독일에 결정적인 호재로 작용한 데다 사용자와 근로자 간 합의 및 협력을 중시하는 '라인모델'이 경제위기 시에 강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독일 언론들이 소위 '앙겔라 케인스'라 부르는 행운까지 한몫했다. 유럽대륙에 재정위기가 닥친 순간에 운좋게 정책 지향점이 유사한 우파연정이 구성됐고 때마침 미국과 중국이 케인스식 대규모 사회인프라 투자를 위기 대처 해법으로 내세우면서 독일 수출이 급격히 늘어났다.

하지만 독일의 경제 성장에 마냥 높은 점수를 주기엔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이 최대 리스크로 꼽힌다. 올 1~5월 독일의 대중 수출 비중은 55%로 전체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BMW와 벤츠,아우디 등 독일차의 중국 판매는 올 들어 차종별로 63~132% 증가했다. 독일 주력산업인 기계산업 분야 최대 수요처에서도 중국이 미국을 제쳤다. 독일의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1%로 일본(13%)이나 미국(11%)을 크게 뛰어넘는다. 근본적으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차이나 의존 리스크'가 심화된 것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중국 경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중국 의존도가 높은 독일 경제도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순리"라고 지적했다.


◆ 독일이 불균형 키운다?
많은 전문가들은 독일 경제성장의 진짜 문제는 독일이 정작 유로존 전체 발전에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유로존이라는 거대시장을 확보했지만 그 경제효과가 독일 국내에만 국한됐다는 주장이다. 실제 23일 발표된 8월 서비스 ·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를 보면 독일은 전달의 59에서 59.3으로 높아진 반면 유로존 전체는 56.7에서 56.1로 하락했다.

로이터통신은 "독일이 경직됐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긴축정책을 고집하면서 이웃국가들이 재정적자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변국에 물건을 팔기만 할 뿐 주변국 수출품을 소비하는 데는 소홀한 데다,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데도 긴축정책을 고수해 돈마저 풀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독일 경제가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하며 순항을 하는 것에 대해 유로존 통합과 그에 따른 환율 효과로만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독일 경제가 유로존 내에서 수출 확대를 기반으로 사실상 나홀로 고성장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독일과 그리스를 비롯한 'PIGS' 국가들이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로 묶이면서 '환율 이점'을 경제규모가 크고 상품 경쟁력을 가진 독일이 독차지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독일이 유로존의 지역 통합에 앞장서고 유로화로 경제를 묶는 데 나선 이유가 애초 지역 내 경제적 불균형을 활용하기 위해 길게 내다보고 포석한 것이었다는 분석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때문에 유로존 주변국들은 독일이 거둔 수출 기반의 경제성장 열매를 나누자고 한다.

독일과 달리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나 스페인은 경제 기초 체력이 약해 유로화 약세 효과는 구경도 못한다. 그리스는 2분기 GDP가 -1.5% 성장하며 뒷걸음질쳤고 실업률은 12%로 치솟았다. 스페인 역시 2분기 성장률이 0.2%로 부진했고 3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있다.

유로존 내 양극화는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폭탄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줄리언 캘로 바클레이즈캐피털 이코노미스트는 "표면적으로는 유로존 경제가 안정 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얼마나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며 "향후 독일의 지표가 악화돼 투자자들이 자신감을 상실하면 지금껏 유로존을 지탱해왔던 안정화 메커니즘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