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지병' 수렁에 빠지나] (1) 복지지출 1997년 16조→올해 81조…규모보다 속도가 문제
세계 15위의 경제 규모를 갖고 있는 한국은 복지에 얼마나 많은 예산을 쓰고 있을까.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은 전체 예산의 9.0%다. '복지국가'로 불리는 유럽 선진국들이 GDP의 20~30%를 복지예산으로 쓰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아직은 비율이 낮은 편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은 경제 발전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고 국민소득 대비 고령 인구 비율도 낮기 때문에 이미 고령화된 유럽 국가와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선거 때마다 무상급식이나 저소득층 지원 등 복지 요구가 갈수록 늘어나고 '복지는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는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유럽에서 앓았던 복지병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우려다.

◆급증하는 복지지출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복지 제도는 미비했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극빈계층에 대한 생계비 일부 보조가 고작이었다. 예산을 기준으로 봐도 1997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의 3.8%만 복지에 쓰였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닥치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복지예산이 두 배로 급증했다. 실직자에 대한 실업보험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새로 도입된 탓이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복지국가 도입 논의가 본격화됐다. 2006년 8월 발표한 '희망한국 비전 2030'이 대표적인 사례다. 2030년까지 복지지출 비중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인 21.2%까지 확대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재정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향후 과제로 남겨놓았다.

실용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복지지출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07년 제정된 기초노령연금법이 2008년부터 시행된 데다 기존 제도에 따른 예산지급액이 큰 폭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복지지출 비중은 지난해 GDP 대비 8.8%로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금액으로는 1997년 16조원이던 것이 올해 81조원으로 늘었다.

◆위협받는 국가재정

복지 예산은 좀처럼 줄이기 어렵다는 것이 특징이다. 올해 복지지출 예산 81조2000억원 가운데 71.5%가 의무지출로 각 부처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재량지출은 28.5%에 불과하다. 급격한 노령화까지 더해지면 현행 제도만으로도 예산지출이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한국 '복지병' 수렁에 빠지나] (1) 복지지출 1997년 16조→올해 81조…규모보다 속도가 문제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의무지출뿐만 아니라 일반 복지지출도 예산을 줄이기가 매우 힘들다"고 밝혔다. 조세연구원은 새로운 복지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지금 있는 제도만 유지하더라도 복지지출은 2050년에 GDP의 24.7%로 OECD 평균치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10.7%였던 노인인구(65세 이상) 비율이 2050년에는 38.2%로 늘어나면서 건강보험 지출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재정분석센터장은 "현행 복지제도의 확대도 가정하지 않은 전망"이라며 "만약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거나 기존 제도가 확대되면 지출은 더 늘어난다"고 말했다.

◆문제의 근원은 포퓰리즘

문제는 복지 예산에 대한 수요가 선거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면 무상급식 실시와 저소득층 교육비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어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취약계층을 엄선해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표를 얻기 위한 선거공약 차원에서 복지정책이 남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세금의 지원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자립할 수 있는 사람들마저 복지의 그늘 아래로 몰려드는 부작용이 생기고 예산도 낭비되고 있다.

박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남유럽 국가들의 복지병을 키운 또 다른 원인은 바로 정부와 정치권의 뿌리깊은 포퓰리즘"이라고 분석했다. 그리스의 경우 선거 때마다 집권당은 이익집단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각종 산업 및 농업 보조금,고용보호 등 경제적 편익을 제공했다. 심지어 표를 얻는 대가로 지역 유권자들에게 고용이 보장되는 공공부문 일자리를 나눠주기도 했다.

실제로 유럽 국가들의 경우 좌 · 우파 간 정쟁이 가열되면서 경쟁적으로 복지예산이 늘어나고 인기가 없는 연금개혁 등은 지연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문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남유럽 국가들은 재정위기가 터지기 직전까지도 정치적 지지와 복지 혜택을 교환하는 야합이 남아 있었다"며 "이 때문에 문제가 터졌을 때 해법을 알면서도 이행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남유럽 국가에서 이미 나타난 포퓰리즘의 문제점을 예방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인기영합적 정책들을 가려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