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세 도입 논의는 지난해 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해 공적자금을 수혈받은 은행들에 세금을 매겨 향후 발생할지 모르는 또 다른 위기에 대비하자는 차원에서 나왔다. 세금 부과 대상은 은행들의 비 예금성 부채였다.

하지만 캐나다 등 금융위기 영향이 적은 국가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자국 은행들은 위기 유발과 무관하고 건전한 편인데 왜 똑같이 부담해야 하느냐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캐나다 정상회의에서는 원론적인 수준의 원칙만 합의하고 시행 여부는 각국에 맡기기로 했다. G20 회원국들 간 균열을 막기 위한 일종의 봉합이었다.

은행세를 도입키로 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4개국은 이번 국제공조 무산과 상관없이 독자적인 도입에 나설 움직임이다.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은 "가장 먼저 도입키로 한 영국의 경우 당초 예정대로 2011년부터 시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과 대상은 영국 은행뿐만 아니라 영국에서 영업 중인 외국계 은행이다. 세율은 초기 0.07%에서 시작해 점차 높여갈 예정이다. 세수 규모는 연간 20억파운드(약 3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영국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미국도 은행세 부과안이 의회를 통과하는 대로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프랑스 독일도 자체적인 은행세 도입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선 특정 국가만 은행세를 매길 경우 국제 자본이동에 왜곡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오는 11월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한국은 은행세를 독자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은행세 도입을 위한 국제공조가 무산된 것과 무관하게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것"이라며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우리가 은행세를 검토했던 이유는 위기에 취약한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을 막자는 것인 만큼 선진국들과는 도입 취지가 처음부터 달랐다"며 "도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