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교토식 경영' 배우기 열풍] (4) 우물 여럿 파다간 자칫 헛물…"1등 콘덴서 하나만"
콘덴서 전문 제조업체인 니치콘의 다케다 잇페이 회장(69)은 교토에서 샐러리맨 신화로 통한다. 1963년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35년 만인 1998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지난달 교토 니치콘 본사에서 만난 다케다 회장은 "회사가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도쿄의 사립 명문 와세다대 상학과 출신인 그는 튀는 선택을 했다. 도쿄의 대기업이 아니라 교토의 중소기업에 입사했던 것이다. 그가 교토행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회사 측이 '연공서열'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당시 연공서열은 일본 기업에선 기본이었다. 혈기왕성했던 그는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길 원했다. 다케다 회장은 "주식 한주 없는 내가 CEO 자리까지 올랐으니 당시 회사의 약속은 거짓이 아니었다"며 웃었다.

교토 기업의 특징 중 하나는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오너에 의한 경영.그러나 니치콘은 오너 2세 대신 전문경영인을 선택했다. 연공서열이나 인맥이 아니라 실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문화가 창업 초기부터 자리잡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해외시장서 승부한다

[한국기업 '교토식 경영' 배우기 열풍] (4) 우물 여럿 파다간 자칫 헛물…"1등 콘덴서 하나만"
다케다 회장은 입사 4년차인 1967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좁은 일본 시장만 상대해선 더 성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니치콘은 그에게 미국 시장 개척 특명을 부여했다.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17년 동안 미국에 머물면서 제로(0)였던 콘덴서 시장점유율을 1위로 끌어올렸다. 다케다 회장은 우선 제너럴일렉트릭(GE) 등 미국 전자제품 메이커를 타깃으로 정했다. 미국 가전업체들은 일본 기업과 달리 합리적이었다. 일본 기업들은 과거 거래 실적이 없으면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기업에 과거 실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제품 성능만 뛰어나면 흔쾌히 구매해줬다.

그는 가전제품용 콘덴서 매출이 안정되자 자동차용 콘덴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자동차 메이커를 뚫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가전제품 메이커들과는 달리 미국산 부품을 써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그러나 품질을 앞세워 지속적으로 설득하자 견고하던 자동차 메이커들의 문도 결국 열렸다.

다케다 회장은 "교토 기업의 대부분은 일찍부터 해외시장에서 승부해 세계 1위의 제품 경쟁력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강한 것을 더욱 강하게

니치콘은 창업 이래 지금까지 콘덴서와 콘덴서 연관 제품만 만들고 있다. 한우물을 팠기 때문에 품질 경쟁력은 자연스럽게 뒤따라왔다. 품질 경쟁력이 있기에 해외 시장 개척도 가능했다. 다케다 회장은 "한정된 자원을 여기저기 분산하다 보면 2,3등짜리 제품밖에 못 만든다"며 "한곳에 집중해야 1등을 할 수 있고,세계 1위가 되지 못하면 회사의 존속을 장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의 위험은 없을까. "기술이 발전해 콘덴서가 필요없는 세상이 되면 니치콘은 망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 명료했다. "인류가 전기를 사용하는 한 콘덴서는 필요하다. 우리는 더 경쟁력 있는 콘덴서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

◆차입금 제로(0)

다케다 회장은 1998년 CEO에 오르자마자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주력 제품인 '알루미늄 전해 콘덴서'의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알루미늄 전극박 공장을 건설키로 했다. 여기에 드는 돈은 230억엔(약 2800억원).기관투자가들은 "왜 경기 침체기에 대규모 투자를 하느냐"고 말렸다. 하지만 다케다 회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원재료를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고 맞섰다. 강경하던 기관투자가들은 "은행 돈이 아니라 회사 내부 유보금으로 투자하려는데 왜 말리느냐"는 다케다 회장의 논리에 두손을 들었다. 이 투자는 니치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자였다. 고용량 알루미늄 전해 콘덴서 시장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는 밑거름이 됐다.

니치콘은 빚이 없다. 지출은 들어오는 현금 범위 내에서 이뤄진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번 돈으로 투자한다. 다케다 회장은 "남들이 은행 돈을 빌려 덩치를 키우는 건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는 역량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만 투자한다"고 강조했다.

교토=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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