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GM을 국제중재재판소에 제소하는 등 강공 카드를 빼어든 배경에는 GM과 GM대우가 체결한 비용분담협정(CSA · Cost Sharing Agreement)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3일 "CSA 개정이야말로 GM대우가 GM과 결별하더라도 껍데기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장기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라며 "국제 중재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5월3일자 본지 1면 참조

CSA는 2007년 GM대우를 포함한 전 세계 GM 계열사들이 본사와 체결한 계약으로 신차개발 비용을 GM 계열사들이 분담하되 라이선스는 싱가포르 자회사를 통해 GM본사가 통합관리하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이에 따라 GM대우는 신차 개발에 참여하고도 매출액의 5% 이상을 로열티(기술사용료)로 지급하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개발비는 판매 대수에 따라 사후 정산하고 있지만 공정한 비율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CSA상 불합리한 비용 분담도 문제지만 이로 인해 GM대우가 기술소유권은 물론 상표사용 권한조차 주장할 수 없는 데다 GM이 GM대우에 손을 떼더라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는 입장이다.

산은은 CSA 개정 요구가 모회사인 GM과 자회사인 GM대우 간 불공정 계약을 문제 삼는 것으로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자료 요구와 시정 요구도 가능한 만큼 국제중재와 함께 공정위에 진정을 내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산은이 지난해 10월 이뤄진 GM대우 증자를 취소시키려 하는 것도 GM대우 경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산은은 GM이 자발적으로 증자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 달간 유예기간을 줬으며,GM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국제중재재판소가 공식 심리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GM이 산은의 요구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논의를 일방적으로 중단한 게 산은의 강경대응을 유발한 측면이 원인이 됐다"며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이와 함께 오는 10월 기한이 끝나는 GM대우에 대한 12억5000만달러 규모의 한도성 여신도 연장 없이 예정대로 종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산은은 GM이 지난달 말 약 1조원 규모의 한도성 여신을 사용 중이라며,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를 관리하기로 했다. 10월 종료시 남은 대출금에 대해서는 일시 또는 분할상환을 요구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산은이 국내에서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국제중재를 선택한 것은 GM의 대주주가 미국 정부라는 점에서 이번 문제가 외교적 사안으로 확대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산은과 GM 간 대립은 국제중재와 국내 공정위 제소로 이어지면서 장기전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