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테네 북부의 고급주택지.정기 세금 신고 때 집에 야외수영장이 있다고 자진해서 밝힌 가정은 324세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조세당국에서 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이 동네에선 1만6974개의 수영장이 발견됐다. 최근 프라다와 샤넬 등 명품가게가 즐비한 아테네 콜로나키 지역에서 영업하는 의사 15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절반 이상이 연소득 4만달러 이하라고 답했으며,이 중 34%는 소득세 면세점인 1만3300달러 미만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이 지역의 1년 임대료에도 못 미치는 터무니없는 금액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일 그리스에서는 이러한 거짓 신고와 탈세가 오랫동안 만연해 왔다며 "연간 30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탈세만 바로잡아도 그리스의 빚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은 1200억유로 규모의 그리스 지원방안을 마련하면서 그리스에 강도 높은 재정긴축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리스에선 이에 반발하는 대규모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그리스 의회를 통과한 새로운 세법은 소득세율 및 부가가치세율 인상뿐 아니라 자영업자들의 탈세를 막기 위한 장치들도 포함돼 있다. 일례로 신문가판대를 운영하는 사람은 영수증을 발급하고 현금등록기를 사용해야 한다.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그리스 시민 사이에선 "우리도 성숙해져야 한다"는 반성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당장 상황이 좋아지길 기대하긴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탈세문화가 보다 광범위한 뇌물 · 부패 전통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NYT는 그리스엔 '파켈라키(그리스어로 '작은 봉투')'라는 뇌물 관행이 고착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공무원들에 대한 뇌물은 매우 일반적이라 케이스별 '공정가'까지 정해져 있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300유로(약 400달러)를 주면 자동차 배기가스조사 스티커를 받을 수 있는 식이다. 특히 세무공무원은 뇌물로 '매수'하기 가장 쉬운 공무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의 지하경제 규모는 전체 국민총생산(GDP)의 20~30% 수준으로 파악된다.

한편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리스 구제금융과 관련, IMF의 그리스에 대한 '관용'에 아시아 국가들이 내심 불만스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과 태국 등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IMF의 가혹한 긴축조치를 경험했던 국가들이 IMF가 그리스 구제금융 땐 훨씬 너그러운 조건을 달고 있는 것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FT는 아시아국의 한 관료가 "유럽통화기금(EMF)이 워싱턴 19번가(IMF본부 위치)에 있다"는 뼈 있는 농담을 했다고 보도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