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황제'로 오랫동안 군림해온 골드만삭스가 '권력'과 '여론'의 협공 속에 궁지에 몰렸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사기혐의와 관련된 민사소송을 제기당한 데 이어 영국과 독일 금융당국의 조사까지 받게 될 처지다.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되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소된 자체가 명성에 흠집나는 일이다.

20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과 유럽 금융사들도 모기지증권 손실과 관련,골드만삭스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입장에서는 전선이 확산되며 더욱 궁지에 몰리는 양상이다.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SEC가 밝힌 골드만삭스의 이번 거래 행태는 '돈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 수 있는 곳이 월가'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알맞다. 이러한 월가의 '탐욕'이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부정적 인식이 심화되는 분위기다.

◆"골드만 제소 우연 아니다"

한편에선 SEC의 골드만삭스 제소가 민주당과 오바마 정부의 금융개혁 추진과 맞물려 있다는 해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렸던 엘리엇 스피처 전 뉴욕주 검찰총장은 이날 CNBC에 나와 "세상에 우연은 없다"며 "민주당이 상원에서 금융개혁을 밀어붙이려는 시점에 기소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마녀 사냥'과 정당한 법 집행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골드만삭스는 법적으로나 사실적으로 근거 없는 소송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채권 매매 때와 마찬가지로 주택모기지 증권을 기초로 만든 파생상품(부채담보부증권 · CDO) 거래도 매수자와 매도자 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임직원에게 남긴 음성 메시지를 통해 "SEC 고소와 관련한 언론 보도를 보고 매우 언짢았다"며 "골드만삭스는 직원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융회사로서 성실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다.

역사적으로 골드만삭스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의 명성을 쌓아왔다. 골드만삭스는 1869년 독일계 유대인 마르쿠스 골드만이 사위인 새뮤얼 삭스와 함께 뉴욕 맨해튼에 세운 어음 중개회사로 출발했다.

1929년 10월 주가 대폭락에 따른 거래 손실로 최대 위기에 빠졌을 때 경영사령탑을 맡은 시드니 와인버그가 투자은행 부문에 집중하면서 활로를 찾았다. 이후 기업공개(IPO),채권 및 주식 거래,상품 거래,국제영업 및 인수 · 합병 자문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혀나갔다.

하지만 1994년 무리한 채권 투자로 인한 손실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고 일부 파트너들이 회사를 등지기도 했다. 파트너 형태로 운영돼온 골드만삭스는 1999년 내부 격론 끝에 IPO를 추진했다. 2006년 5월 CEO였던 헨리 폴슨이 재무부 장관에 기용되면서 블랭크페인 현 CEO가 경영을 이어받았다.

◆AIG부터 그리스정부까지 거래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 골드만삭스는 최대 전성기를 맞았다. 2007년 신용 및 주택시장 활황에 힘입어 459억달러 매출에 116억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금융위기 때도 두각을 나타냈다. 신속하게 은행 지주사로 전환해 정부의 구제금융자금을 받았고 워런 버핏도 원군으로 끌어들였다. 지난해 4분기 사상 최대 분기 순이익을 낸 데 이어 올 1분기 순이익도 34억6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1% 증가했다. 매출액은 127억8000만달러로 36% 늘었는데 이는 월가의 예상치를 훨씬 웃돈다.

골드만삭스는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모기지 관련 CDO의 부도위험을 신용디폴트스와프(CDS)를 사는 방식으로 AIG에 떠넘겼다. 이로 인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촉발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엔 그리스 정부가 통화스와프 거래를 통해 고의적으로 부채 규모를 줄이도록 도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때마다 골드만삭스는 당당한(?) 해명을 통해 어려움을 돌파해왔다. 이번에도 골드만삭스는 2년 전부터 진행돼온 CDO 관련 조사가 금융개혁을 앞둔 현 시점에서 기소로 이어졌음을 부각시키면서 자신들은 어떤 불법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을 알리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는 그동안 탄탄한 인재풀과 로비력을 바탕으로 위기에 몰릴 때마다 되살아나는 저력을 보여왔다. 이런 전통이 이번에도 이어질지 주목된다.

뉴욕=이익원 특파원/박성완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