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경제관료들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일에 파묻혀 산다.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경제부처 관료로 들어온 만큼 경제관료로서 승부를 걸겠다는 욕심이 남다르다. 내부 경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한국경제신문이 주요 경제부처 관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는 경제관료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경제관료의 70% 가까이가 민간이직 문제를 심각히 고민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민간에서 괜찮은 자리를 제의하면 옮기겠다는 응답률도 27.1%에 달했다.

◆경제관료 만족도 떨어져


경제관료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나쁘지 않았다. '대체로 자부심을 느낀다'가 가장 많은 57.6%(49명)를 차지했다. '매우 느끼고 있다'도 12.9%(11명)였다. '보통'이라는 응답은 27.1%(23명)였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2.4%(2명)에 불과했다. 국민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경제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현재의 봉급 수준'에 대해서는 '불만족스럽다'가 과반수인 51.2%(44명)에 달했다. 부처에 관계없이 비슷한 비율로 불만이 높았다. '그저 그렇다'는 37.2%(27명)였고 '대체로 만족한다'는 응답은 11.6%(10명)밖에 되지 않았다.

'관료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방법'을 묻는 질문에도 '처우개선'이 압도적으로 많은 62.2%(51명)였다. 과중한 업무에 비해 봉급 등 대우가 낮다는 불만이 많았다. 특히 경제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관료들은 민간으로의 이직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처우가 민간보다 낮다는 인식이 더 강한 것으로 해석됐다. '정치논리 배제'(24.4%),'연줄 배제'(11.0%),'발탁인사'(2.4%) 등도 사기를 높이는 방법으로 꼽혔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책 결정이나 시행에서 가장 큰 애로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부처 이기주의'를 꼽은 응답자가 29.3%(24명)로 가장 많았다. 영리의료법인 허용 등 여러 현안을 놓고 부처 간 의견 조율이 쉽지 않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정치권의 압력'(25.6%)과 '청와대 산하 각종 위원회의 간섭'(24.4%)을 지적한 경제관료들도 많았다. 각종 정책과 인허가 과정에서 정치권 압력이 여전하며,'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많은 위원회들의 간섭도 경제관료들에게는 부담이다. '언론의 지나친 보도'를 거론한 답변은 20.7%(17명)였다.

◆초임 사무관들도 박탈감 커


이제 막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사무관들은 어떨까.

행정고시 재경직 합격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획재정부에 지난 3월 배치된 초임 사무관 22명 전원에게 설문지를 돌렸다. 응답한 16명 가운데 81.3%인 13명이 경제관료의 위상이 과거보다 '현저하게 떨어졌다'거나 '비교적 떨어졌다'고 답했다. '비슷하다'는 응답은 3명에 그쳤고 위상이 높아졌다고 답한 사람은 1명도 없었다.

경제관료의 위상이 약해진 이유에 대해서는 '사회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관료 조직의 정체'를 꼽은 응답과 '정부보다 시장의 영향력이 확대된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응답이 각각 4명으로 같았다. '국민들의 불신'을 이유로 지적한 사람은 3명이었고 '정치논리에 휘둘리기 때문'이라는 답도 1명 있었다.

초임 사무관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민간기업에 못 미치는 급여 수준이었다. '기업 등 민간 부문으로 진출한 대학 동기들과 비교해 불만족스러운 점'을 묻는 질문에 87.5%인 14명이 '낮은 보수'라고 답했다.

기본급에 교통비와 식비 등을 합친 초임 사무관의 월 급여(상여금 포함 실수령액)는 군필 남성을 기준으로 월 2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야근이나 주말 · 휴일 근무를 할 경우 수당이 추가되지만 그런 경우라도 250만원은 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난해 11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조사해 발표한 직원 1000명 이상 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평균 월급 237만원과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에 비해 업무 강도는 웬만한 대기업 못지않다. 한 사무관은 "정해진 출근시간은 오전 9시지만 대부분 8시까지 출근한다"며 "퇴근은 일러야 오후 8시에 할 수 있고 10~11시까지 일하는 날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급여 외에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신경써야 한다는 점과 공무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다는 점을 애로사항으로 꼽은 응답도 있었다.

'경제관료로서 꿈'을 묻는 질문에는 '장 · 차관이 되고 싶다'는 응답이 1명에 그친 데 비해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응답이 5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 밖에 '공직 경험을 살려 민간 기업의 최고경영자로 자리를 옮기고 싶다','정계에 진출하고 싶다','연구원이나 교수가 되겠다'는 응답도 나왔다.

전문성을 쌓고 싶은 분야를 묻는 질문에는 거시정책을 선택한 응답자가 5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세제가 4명,국제금융이 3명,예산이 2명 등이었다.

서욱진/유승호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