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은행세 도입을 승인하고 프랑스도 도입 의사를 밝히는 등 글로벌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은행세 도입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지난달 31일 열린 각료회의에서 은행들이 향후 금융위기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기금'에 연간 10억~12억유로(13억~16억달러)를 적립토록 하는 내용의 은행세 도입 방안을 승인했다. 금융위기가 발생해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할 필요성이 생길 경우 국민들이 낸 세금이 아니라 이 기금에서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7월까지 구체안을 마련하겠다"며 "국제적 합의가 요구된다면 내용을 수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이례적으로 독일 각의에 배석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도 "금융위기 비용을 은행에 부담시켜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서 은행세 도입이 국제적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국은 EU 차원에서도 은행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해 9월 미국 피츠버그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 처음 거론된 은행세 도입은 지난 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독자적인 은행책임세 부과 방침을 밝히면서 각국에서 논의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은행세 도입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은행들이 더 큰 책임,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각국이 도입했거나 추진 중인 방안에는 차이도 있다. 독일은 은행에만 세금을 부과해 별도의 기금을 만드는 방안을 계획 중인 반면 프랑스는 보험 헤지펀드까지 포함해 세금을 부과하고 이 돈이 정부로 들어오게 하는 방식을 고려 중이다. 스웨덴은 이미 지난해 독일과 비슷한 방식의 은행세를 도입했다. 스웨덴은 은행들이 낸 세금으로 조성한 '안정화기금'을 궁극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5%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영국 정부는 은행세 도입에 동의하면서도 '글로벌 컨센서스'를 강조한다.

이에 비해 미국은 미리 은행세를 부과해 펀드를 조성해두기보다는 위기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에 수수료 형식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위기가 발생하면 정부가 일단 임시로 공적자금을 투입한 뒤 나중에 은행에서 돈을 걷어 메우겠다는 것이다. 이는 사전에 펀드를 만들어두면 은행들이 이를 믿고 지나친 리스크를 추구하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지거나 퇴출되어야 할 은행을 무조건 연명시키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월 제안한 '금융위기 책임세(일명 오바마세)'의 골자는 대형 금융사들에 지원한 공적자금을 회수하고 차후 사태 방지를 위해 자산 500억달러 이상 대형 은행들의 단기부채에 0.15%의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향후 10년간 최소 900억달러가 징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세는 오는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 · 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마련한 방안을 놓고 글로벌 차원의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IMF 방안이 사전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 언론들은 6월 캐나다 G20 정상회의에서 은행세 도입에 대한 원칙적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의장국인 캐나다가 은행세 도입에 반대해 전망은 불투명하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