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나쁜 뉴스보다 더 안 좋은 것이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투자자로선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미국의 주식과 금 시장은 이 같은 불확실성의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한국 해군 초계함이 침몰 중이란 소식에 시시각각 금값과 주가가 요동쳤다. 새삼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고,침몰 원인도 분명치 않아 글로벌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북한 리스크에 대해선 이젠 증시에서도 내성이 생겨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란 게 대다수 증시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주가는 추락,금값은 급등

지난 26일 밤 10시(이하 한국시간).뉴욕 상품거래소의 현지시각은 오전 9시였다. 금 가격은 6월 인도분이 온스당 1097달러 선에서 횡보했다. 지난 3일 1143달러까지 올랐던 금값은 24일 1088달러로 떨어지며 안정세를 되찾는 중이었다. 하지만 26일 자정 무렵 로이터 등 주요 통신사들이 일제히 "한국 해군의 초계함이 침몰 중"이라는 속보를 타전하자 금값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1096달러 선에서 주춤했던 금 시세는 순식간에 1106달러까지 치솟았다. '코리아 리스크'가 대표적인 안전 자산인 금 가격을 자극한 것이다.

불똥은 뉴욕 증시로 옮겨 붙었다. 이날 밤 10시30분(현지시간 오전 9시30분) 거래를 시작한 다우지수는 2시간 만에 10,909까지 올라 2008년 9월26일(11,143) 이후 18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으며 승승장구하던 중이었다. 장중 발표된 미시간대의 3월 소비자신뢰지수가 시장 예상치를 넘어섰다는 소식에 경기회복 기대감이 확산됐다.

그러나 자정을 넘기면서 한국 초계함 뉴스로 상승 탄력이 눈에 띄게 둔화되더니 급기야 27일 0시40분 "북한의 공격 가능성이 의심된다"는 속보가 나오자 지수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기사 제목에 '북한'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자 놀란 투자자들이 서둘러 투매에 나선 것.

새벽 2시9분에는 10,816까지 주저앉아 이날 고점 대비 낙폭이 93포인트에 달했다. 다시 30포인트가량 반등하며 다우지수는 10,850선으로 되올랐지만 투자심리는 냉랭했다. 새벽 2시를 전후해 "북한과의 연관 가능성은 낮다"는 후속보도가 나왔음에도 더 이상 회복하지 못한 채 거래를 마쳤다.

초계함 침몰 뉴스가 촉발한 금값 상승세는 북한 연계 가능성이 낮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장중 내내 이어졌다. 여기에는 유로화가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임에 따라 달러화 약세에 베팅한 세력들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달러화 가치와 금값은 정반대로 움직인다. 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확산되면서 이날 미 국채 5년물 수익률은 0.044%포인트,10년물은 0.031%포인트 각각 하락(채권값 상승)했다.

◆장중 불거진 리스크가 혼란 키워

이번 '코리아 리스크'에 대한 뉴욕 증시와 금시장의 반응은 과거 유사 사례에 비해 훨씬 민감했다는 평가다. 초계함 침몰 사건이 미국의 낮 시간대에 일어난 데다 원인이 즉각 확인되지 않아 글로벌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졌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북한 리스크가 부각됐을 때는 미국 투자자들이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증시의 반응을 지켜본 후 거래에 나섰기 때문에 이슈가 희석되는 효과가 있었다"며 "하지만 이번 경우는 장중에 갑작스럽게 발생한 탓에 불안심리가 극도로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2006년 10월3일 미 증시가 개장하기 전에 북한이 전격적으로 핵실험 계획을 발표했지만 다우지수는 오히려 56포인트 상승했다. 이어 10월9일 실제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북한이 발표했을 때도 코스피지수는 32포인트 떨어졌지만 다우지수는 7포인트 올랐다. 핵실험이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 덕분이었다.

지난해에도 4월5일 북한의 로켓 발사후 이틀간 다우지수가 하락했지만 곧바로 이틀 연속 반등해 발사 이전보다 더 높이 상승했다. 작년 11월10일 3차 서해교전 때에도 다우지수는 20포인트 올랐다.

◆국내 증시엔 '반짝 악재' 그칠 듯

증시 전문가들은 천안함 침몰 사건이 미칠 국내 증시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연계됐을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지 않은 데다 그동안 '북한 리스크'에 대해 시장의 내성이 많이 길러졌기 때문이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북한과 연계된 것이 아니라면 투자자들의 관심은 1분기 실적시즌을 앞두고 기업의 펀더멘털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황창중 우리투자증권 투자정보센터장은 "지난해 북한의 로켓 발사나 서해교전 당시에도 코스피지수는 상승 마감했다"며 "만에 하나 이번 사건이 북한과 연계돼 있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가 오래 가진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해영/김동윤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