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 컨설팅 업체인 AT커니는 최근 25개 '글로벌 챔피언'을 선정하면서 1위와 3위에 닌텐도,애플을 올렸다. 각각 이와타 사토루,스티브 잡스(사진)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오너의 지휘 아래 지난해 금융 위기의 높은 파도에도 휩쓸리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했다. 미국 자동차 '빅3' 가운데 유일하게 흔들림없이 자리를 지킨 기업은 빌 포드가 이끄는 포드자동차뿐이다. 비록 대량 리콜 사태로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했지만 도요타 역시 숱한 난제를 풀기 위한 해법으로 '오너의 귀환'을 선택했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위기 속에서 빛난 오너의 사례들로 장식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이 대표적이다. 발렌베리 기업집단은 지주회사격인 인베스터를 비롯 소니에릭슨 등을 보유한 가족 기업의 전형으로 5대째 가업을 승계하고 있다.

2000년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계열사인 소니에릭슨과 ABB가 파산 직전까지 몰리자 발렌베리 가문은 인베스터를 통해 두 회사의 지분을 확대했다. 당시 스웨덴 언론은 '굿바이,인베스터'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너의 과감한 결정에 투자자들은 증시에서 '바이(buy)'로 화답했고,계열사들은 모두 정상을 회복했다. 발렌베리 기업집단은 지난해 금융 위기에서도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메르세데스벤츠와 함께 고급 자동차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BMW도 한때는 흔적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주요 공장이 파괴된 데다 주력 모델인 고가 자동차의 판매 실적 악화까지 겹치자 1959년 다임러벤츠와의 합병론이 대두됐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BMW의 대주주였던 헤르베르트 콴트다. 콴트 가문이 지분을 확대하면서 BMW는 1963~1972년 연평균 23%의 성장률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하며 세계 정상의 자동차 업체로 올라섰다.

포드 역시 2001년 10월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헨리 포드의 증손자인 윌리엄 클레이 포드 주니어를 임명하면서 변신에 성공했다. 최근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포드의 건재는 금융 전문 CEO가 지배한 GM의 몰락과 비교되면서 한층 주목을 받았다.

IT(정보기술) 산업에선 델컴퓨터의 창업주인 마이클 델과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델은 2004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델컴퓨터가 부진을 면치 못하자 2007년 CEO로 전격 복귀해 회사의 재건을 이끌어냈다. 잡스는 1985년에 회사를 떠났다가 1997년 귀환,'아이폰 돌풍'을 일으키며 애플을 '글로벌 톱 플레이어'의 반열에 올려놨다.

이처럼 위기는 늘 오너 가문의 복귀를 원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위기일수록 신속한 의사 결정과 장기적인 비전이 필요하다"며 "오너는 배당보다 자본의 축적을 중시함으로써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도모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의 복귀에 대해 경제개혁연대가 "외부와의 소통 부재와 폐쇄적인 의사 결정 구조는 위기를 조기에 포착하고 수정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결여돼 있다"고 비판하는 등 일각에서는 부정적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연구위원은 "벨기에,오스트리아,독일,네덜란드,스페인,이탈리아,스웨덴은 60% 이상의 기업이 특정 가문 소유"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