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엔 수많은 창업 신화가 살아 숨쉬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퇴출의 참담함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물러나는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강남은 대박과 쪽박,기회와 좌절이 극명하게 교차하는 무대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한 A씨는 2009년 4월 압구정역 현대백화점 맞은편 대로변에 와플 가게를 차렸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즐기는 아이템 중 하나라는 얘기를 들었다. 삼청동에서 시작해 압구정동 방배동 등 전국 16곳에 체인점을 낸 와플 프랜차이즈 '빈스빈스'를 모델로 삼았다. 강남 한복판인 이곳에서 장사가 잘되면 분점을 내달라는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A씨가 최근 가게를 접었다. 장사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돼 권리금 2억원과 인테리어비용 1억원을 고스란히 날린 것이다. A씨는 왜 실패했을까.

◆월세와 매출은 비례하지 않아

A씨는 점포가 역세권이라고는 해도 압구정역 4번 출구와 5번 출구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어 애매하다고 느꼈다. 간판이라도 크게 걸어야겠다는 생각에 조금 무리해서 바로 이웃한 66㎡(약 20평)짜리 상가 두 채를 한꺼번에 임차했다. 한 달 월세는 총 850만원.관리비와 세금까지 합하면 한 달 고정비용이 1000만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밤잠을 줄여가며 아무리 노력해도 월매출 1000만원을 올리기가 빠듯했다. "로데오 상권이 퇴조하기 시작한 데다 처음부터 너무 크게 일을 벌인 게 화근이었어요. 월세 무서운 줄도 몰랐고요. "

2008년 3년 동안 운영했던 잠원동 아구찜 식당을 접은 박동신씨 역시 마찬가지다. 박씨는 권리금 3억원에 보증금 3억3000만원,인테리어 비용 1억9000만원까지 총 8억2000만원을 들여 식당을 열었다. 그는 "처음 2년 동안은 집에도 못 들어가고 근처 찜질방에서 먹고 잘 정도로 열심히 일했지만 남는 게 없었다"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월세(350만원)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철용 한국소자본컨설팅협회 사무총장은 '착시현상'을 주의하라고 지적했다. 최 사무총장은 "강남지역의 경우 수요층이 많은 데다 월세가 비싸 사람들이 '이래서 강남이구나''월세가 높은 만큼 장사도 잘되겠지'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손님의 회전율을 아무리 높여도 세 부담을 감당하기 힘든 아이템은 도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인건비도 꼼꼼하게 관리해야 한다. 김형기 케이알창업 팀장은 "본인이 직접 일을 해야 가게 관리와 인건비 절감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섣부른 유행 편승은 금물

음식점을 하다 실패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시장 환경이다. 음식점은 상대적으로 창업이 손쉬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은 편이다. 특히 강남은 전형적인 공급과잉 시장으로 경쟁이 무척 치열한 편이다.

최근 강남에 유행처럼 생겨나는 곳이 육회집이다. 2008년 수입 쇠고기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쇠고기 가격이 떨어지자 육회가 대중화 기반을 맞이한 것이다. 육회지존,육회마루 등 프랜차이즈 체인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육회집 역시 최근에는 주춤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정대 창업뱅크 팀장은 "잠원동 먹자골목에 2년 전에 생겼던 육회집이 최근 문을 닫은 사례가 있다"며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참치집이나 안동찜닭집 역시 지금 강남에선 찾아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그는 "유행을 타는 프랜차이즈들은 2~3년을 주기로 인기가 시들해지기 때문에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때문에 특별한 맛과 분위기 등을 앞세워 일부러 찾아오게 만들 정도가 아니라면 일단 창업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형기 팀장은 "테헤란로의 경우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주 5일 장사,청담동은 커피 한 잔에 만원을 받을 수 있는 맛과 인테리어 등 지역별로 확실한 컨셉트를 세우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충분히 경험 쌓은 뒤 도전해야

결국 성공 요건은 철저한 사전 준비와 냉철한 판단으로 요약된다. 박동신씨는 "비슷한 가게가 몰려 있는 곳에 점포를 낸다고 해도 내가 열심히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하지만 각종 재료를 들여오는 문제부터 시작해 주방 직원과 서빙 직원들의 갈등까지 장사 시작하기 전에 생각해둬야 할 문제가 너무 많았다"고 밝혔다.

얼마 전 역삼동에서 매물로 나온 인테리어 숍을 처분했던 닥터공인중개법인의 이상훈 대표는 "가게주인 얘기를 들어봤더니,강남에 살아본 적이 없었고 장사 경험도 일천했다"며 "점포를 내서 성공하려면 최소한 몇 달 정도는 다른 가게에서 일을 해보는 등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덤벼들 수 있을 것 같은 아이템도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조현성 코리아창업 팀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직장을 잃은 40대 이상 중년 남자들이 강남에 많은 가게를 내고 있다"며 "스스로 주변여건을 충분히 살피고 있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해당 업종의 최신 흐름이나 상권을 파악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일이 걸린다"고 말했다.

강남엔 무언가를 도모하는 도전자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친구 따라 가는' 사람들에게조차 관대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단 망하면 상처가 깊게 패는 특성을 갖고 있다. 충분히 준비하고 경험을 쌓은 뒤 뛰어들어도 늦지 않다.

정소라/이승우/최만수 기자 iam5ou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