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의 Y변호사와 태평양의 K변호사는 국제중재 분야에서 국내 1,2위를 다투는 라이벌로 꼽힌다. 둘은 법정에서는 경쟁자지만 퇴근하면 같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주민으로 만난다. 가끔 단지 내에 있는 사우나에서 마주치면 국제중재에 대해 서로의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비단 타워팰리스뿐만이 아니다. 강남 지역은 한국 각계의 주도층이 모여 관계를 맺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이들이 모여 이루는 '화학작용'은 강남 거주의 가장 큰 메리트로 꼽힌다. 이른바 '강남 네트워크'다.

사회학에선 한 사람이 성공하기 위한 자본으로 경제적 자본,인적 자본 외에 네트워크로 얻는 자본을 든다. 네트워크 자본은 돈이나 지식과는 달리 다른 사람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010 강남 인사이드] (3) "인맥이재산"…산후조리원서 헬스클럽까지 '거미줄 네트워크'
◆산후조리원에서 클럽까지

강남 네트워크의 주요 연결고리는 '자녀'다. 교육열이 높은 강남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난 직후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자녀를 매개로 인맥을 쌓는다.

강남구 대치동의 산후조리원 '르베르쏘'는 젊은 전문직 부모들의 대표적인 네트워크 형성 장소로 꼽힌다. 산모 16명이 정원인 이곳에 현재 입원한 산모 가운데 전업주부는 지난 12일 현재 한명도 없다. 한의사 1명,교사 4명,교수 2명,의사 2명,디자이너 2명,광고기획사 직원 1명 등 모두 전문직이다. 남편들도 대부분 의사 변호사 등이다. 이곳은 특히 남편들이 조리원에서 잠을 자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남자들끼리 친해지는 경우도 많다. 신필향 원장은 "아기 용품이 뭐가 좋은지,돌잔치는 어떻게 하는지 등의 정보를 교류하다가 자연스럽게 골프 등의 모임으로 발전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부모들의 네트워크는 유치원과 어린이집,학교로 점차 옮겨간다. 강남에서는 학교 어머니회는 기본이고,'아버지회'가 활성화된 곳도 많다.

종교도 강남의 네트워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연결고리다. 이명박 대통령이 다녀 유명한 강남구 신사동 소망교회에서는 변호사와 세무사가 신도들을 상대로 법률 · 세무 등에 대해 개별 상담을 해준다. 교회 관계자는 "재테크 등 정보를 얻으면서 전문가들과 자연스럽게 안면도 틀 수 있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문화 · 유흥'도 네트워크로 연결된다. 요즘 강남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댄스클럽 '헤븐'.이곳은 사업자들 간에 네트워크를 형성시켜 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헤븐의 김병희 이사는 "평일날 가끔 파티를 하는데 고객들의 사업 내용을 보고 연관성이 있으면 다른 사업자들을 소개시켜준다"며 "프랑스의 유명 DJ를 섭외하면 프랑스 무역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데 이날은 그들이 주인공이 된다"고 말했다. 미술이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 받으면서 갤러리도 사교장이 되고 있다. 강남구 청담동 갤러리 '페이스'의 김민경 관장은 "여러 기업 회장님의 사모님들이 갤러리에 들르면서 사교모임을 갖는다"고 전했다.

◆네트워크의 허와 실

네트워크는 곧 돈과 정보로 연결된다. 지하철 3호선 신사역 부근의 S가라오케 영업사장 '자니 오'(예명)씨는 "가라오케 장사는 기본적으로 인맥장사"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고급 가라오케들의 위치는 사람들이 지나가다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며 "웨이터나 사장과 친분이 있는 손님이 주로 오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돈 많고 잘 노는 손님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우리 같은 사람들의 능력"이라고 덧붙였다.

강남 주부들의 재테크 성공 여부도 어디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달려있다는 게 정설이다.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예 · 적금만 고집하다 지금은 수십억원대 부동산 부자가 된 서초구 서초동의 가정주부 C씨(51)가 대표적 사례다. 30대 후반에 서초동으로 이사한 그는 동네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에어로빅 강좌를 나가게 됐다고 한다. 생전 처음 보는 동네 아줌마들과 서먹하게 운동하기를 1주일.

그러다가 우연히 끼게 된 '운동 후 모임'이 재테크 방식을 바꿔 놨다. C씨는 "알고 보니 단순한 친목모임이 아니라 다양한 재테크를 공유하는 알짜 모임이었다"며 "부동산 중개업자와 공무원 부인 등이 있어서 부동산 정보가 많았다"고 말했다. C씨는 2000년부터 재건축 아파트 매매를 시작으로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어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강남 네트워크라고 해서 꼭 구성원들에게 이익만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옥석을 제대로 가리지 않으면 오히려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강남 귀족계인 '다복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계주는 계원들의 돈 수백억원을 가로채 달아났다가 지난 1월 사기 혐의로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계주는 "다복회에 들어오면 대한민국 상류층을 접할 수 있다"며 네트워크를 미끼로 회원들을 모집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강남 사람들이 인맥 만들기에 열성을 보이는 이유는 비슷한 능력과 배경을 가진 부모의 아이들이 같이 학습을 하면 사회적 자본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네트워크가 지나치게 물질과 출세지향으로 흐른다면 계층구조의 고착화로 사회 전체 발전에 해악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도원/성선화/이승우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