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수상 엥글 교수 법정서 증언

로버트 F. 엥글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17일 "통화옵션파생상품 키코(KIKO)는 애초 은행에 유리하게 설계돼 기업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불공정한 상품"이라고 지적했다.

경제 위험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엥글 교수는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변현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우리은행과 D사의 키코 사건 재판에서 원고인 D사 측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주장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미리 정한 환율에 약정액을 팔 수 있도록 한 파생상품으로, 많은 기업이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고자 가입했으나 대부분 큰 손해를 보는 결과를 빚어 논란이 됐다.

엥글 교수는 "기업이 키코 상품으로 이득을 보려면 환율이 지정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여야 하는데 환율의 변동성이 커 이럴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며 "환헤지(위험 회피) 상품으로서는 오류(flaud)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키코 가입으로 기업이 입은 누적 손실은 이론적인 것보다 훨씬 크며 이는 곧 은행의 이익으로 직결됐다"며 "아시아 여러 나라에 도입된 이 상품이 한결같이 기업에만 피해를 줬다는 점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의 수익을 실제보다 과장해 산정했다는 피고 측 변호인의 주장에 대해서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평가 모형으로 계산하면 은행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윤을 붙여 상품을 설계한 것이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엥글 교수는 다른 4명의 국내외 파생상품 전문가와 함께 지난 3월부터 9개월간에 걸쳐 D사 등 17개 수출 중소기업들의 피해 사례를 분석한 보고서를 증거자료로 지난 1일 재판부에 제출한 바 있다.

금융 투자 예측 분야의 권위자인 엥글 교수는 통계 분석 수단의 개선을 통해 미래 예측과 리스트 평가를 위한 새 틀을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한편, 노벨상을 받은 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가 국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한 이날 공판에는 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교수들이 참석해 엥글 교수의 증언을 꼼꼼히 기록하는 등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cielo78@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