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월드의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에서 촉발된 각국의 재정적자 우려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각국이 잇따라 재정적자 감축대책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향후 수년 내 국채 디폴트(부도)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아직은 각국이 발행하는 국채가 시장에서 소화되고 있지만 물량이 과도하게 늘어날 경우 국채가격이 급락(수익률 급등),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세계경제 회복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주변국 국채 디폴트 가능성"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경제학)는 10일 야후 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장은 아니지만 수년 내 국채 디폴트 사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로고프 교수는 "지금 당장은 (디폴트 문제가 생기면) 국제통화기금(IMF)이 수천억달러를 기꺼이 빌려주고 미국 독일 등도 나서서 구제해 주려 하겠지만 향후 몇 년간 각국의 부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처음 표면화된 이후 각국은 금융 구제와 경기부양을 위해 막대한 국채를 찍어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07년 6월부터 올 6월까지 2년간 각국이 발행한 국채의 순증액은 7조달러(BIS 집계 49개국 기준)에 달한다. 미국이 2조4400억달러로 가장 많고 일본(2조3800억달러) 중국(4680억달러) 영국(2130억달러) 등의 순이다. 최근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스페인(1720억달러)과 그리스(950억달러)도 이 기간 중 국채 발행이 급증했다.

미국의 경우 향후 10년간 국가부채가 9조달러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이자분만 4조8000억달러에 달한다. 아직은 미 국채 금리가 연 3%(10년물 기준)대로 낮은 수준이지만 금리가 오를 경우 이자가 급격히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로고프 교수는 "미국이나 독일 등의 재정적자가 크다고 반드시 이들 나라 국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며 "큰 나라들이 돈을 빌리기 위해 시장에 몰려들면 동유럽 우크라이나 남미 등 주변국이 자금조달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페인 "재정적자 줄이겠다"

그리스와 스페인은 재정적자 우려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이날 "내년에 총 재정지출 규모를 올해보다 4% 줄이는 등 2013년까지 재정적자를 유럽연합(EU)이 요구하는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줄이겠다"고 말했다. 현재 스페인의 재정적자는 GDP의 10%에 육박하고 있다. 재정적자가 GDP의 12.7%인 그리스 정부도 오는 14일 재정난 타개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리스 정부는 우선 공무원 임금을 1년간 동결해 재정적자 규모를 1.5%포인트 낮춘다는 계획이다. 또 부가가치세와 담뱃세 등을 인상해 세수를 확충할 방침이다.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의 화두도 그리스와 스페인의 재정적자 해소 문제로 모아졌다. 장 클로드 융커 EU 재무장관회의 의장은 "그리스는 국가부도를 면할 것"이라며 시장 불안을 잠재우려 애썼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리스와 스페인의 좌파정권이 재정감축 정책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일본만 해도 경기부양과 복지공약 실천을 위한 예산 확보가 어려워지자 내년 국채 신규 발행을 44조엔 이하로 억제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는 11일 "국채 발행 규모가 44조엔에서 단 1엔도 넘어선 안 된다고 논의한 적은 없었다"며 국채 발행 상한선을 두겠다는 종전 방침을 철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녀수당 등 핵심 복지공약 실천과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경기부양 예산 확보가 한계에 부딪치자 국채 발행을 늘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박성완/김미희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