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은 기아자동차에 '디자인 경영'이 본격적인 결실을 맺은 해로 기록될 듯하다. 독특한 외관이 특징인 '쏘울'이 독일 '레드닷 디자인상'을,유럽 전략모델인 다목적차량(MPV) '벤가'가 'iF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2개를 거머쥐었다. 둘 다 한국 완성차로는 처음이다.

지난 8일에는 쏘울이 국내 최고 권위의 '2009 우수디자인상' 대통령상을 수상,1년간 이어진 화려한 '수상 퍼레이드'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2005년 기아차 사장으로 취임한 뒤 선포한 '디자인 경영'이 완전한 궤도에 오른 셈이다.

'디자인 기아'를 총지휘하고 있는 주인공은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총괄 부사장(56 · CDO · 사진)이다. 그는 2006년 기아차에 합류한 이후 디자인 기아의 이미지를 굳히는 데 앞장서고 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지난 3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2009 디자인코리아 국제회의'에 참석해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소개했다. 그는 "다른 차에서 유행하는 요소를 이것저것 가져와서는 개성을 발휘할 수 없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그가 가장 먼저 추구하는 가치는 '직선의 단순함'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는 인물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단순함이야말로 궁극적인 발전'이라는 말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같은 디자인 철학은 지난달 출시된 준대형세단 'K7'에 가득 담겨 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K7을 가리켜 "고급 자동차 시장의 월드 클래스급 강자"라며 "단순하고도 정밀한 디자인을 적용,위엄 있는 아키텍처를 완성해 기아차에 또 하나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소개했다.

슈라이어 부사장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양산차에 적용한 '패밀리 룩(family look)'도 최근의 기아차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차량 앞부분 라디에이터 그릴로 호랑이의 코와 입을 형상화한 이 디자인은 작년 6월 출시된 '로체 이노베이션'을 시작으로 기아차 모든 차종에 일괄 적용되고 있다. 쳐다만 봐도 바로 기아차임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디자인 경영을 도입한 지 5년째인 내년에 개편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된다"고 설명했다. 내년 나올 스포티지 후속모델과 로체 후속모델을 통해 기아차만의 디자인을 확실히 각인시킨다는 의지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최근 개발 중인 신차의 렌더링(사진)을 공개해 또 한번의 '진화'를 예고했다. 기아차가 개발 중인 대형세단으로 추정되는 이 사진은 날카로운 전조등과 양 옆으로 튀어나온 거대한 휠하우스, 직선미를 한껏 살린 역동적인 외관이 특징이다.

얼핏 봐서는 슈라이어 부사장이 독일 폭스바겐그룹에 재직하던 시절 디자인에 참여한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를 닮았다. 사진대로라면 국내 대형세단에서는 지금껏 찾아볼 수 없었던 역동적인 모습의 '슈퍼카 스타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슈라이어 라인'으로 불리기도 하는 기아차의 젊어진 디자인은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김봉경 현대 · 기아차 부사장은 "기아차는 내년에도 디자인 기아의 가치를 전면에 내걸고 혁신적인 신차를 계속 선보이며 차별화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슈라이어 부사장이 주도하는 진보적인 디자인에 대해서도 "기아차가 '에쿠스'급으로 개발하고 있는 대형차 'K9(프로젝트명)' 또한 과감하고 역동적인 기아차만의 디자인을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진석 한경닷컴 기자 ge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