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7일 전체회의를 열고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의결했으나 한국은행, 금융감독위원회, 기획재정부 등 관련 기관들은 막판까지 밥그릇 싸움을 벌였다.

재정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한은법 개정안은 한은에 제한적인 금융기관 조사권과 금융안정 기능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감독 총괄권한을 가진 금융감독위원회 등의 정부 내부에서는 한은에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며 법개정 반대 의견을 밝혔다.

반면 한은은 오히려 개정안 중 일부 조항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정부.금융권 "한은 개정안, 너무 나갔다"
금융위원회와 기재부는 한은법 개정안에 정면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정부 입장에서 이번 한은법 개정에 반대한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적으로 논의되는 거시감독의 초점은 어떻게 하면 개별금융회사의 문제가 시스템 위기로 번지지 않게 하는 것으로 어느 나라에서도 한은법 개정안처럼 금융회사의 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결론이 난 곳은 없다"고 강조했다.

한은의 조사권 확대, 지급결제 관련 자료제출권 확대 등은 지난 4월 한은과 금융감독원이 체결한 양해각서(MOU)에 충분히 보장돼 있으므로 개정안이 시행되면 개별 금융기관에 지나치게 많은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한국은행이 지급결제망에 참여하는 금융회사에 대한 공동 검사권을 갖는 것은 과도하다"며 "정부조직법에 금융안정 책임이 정부 조직인 금융위에 있다고 한 것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허경욱 1차관은 "재정위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정부 의견은 좀 더 시간을 갖고 내년에 한은법을 처리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라며 "긴급여신 지원시 한은이 재정부 장관 의견을 청취토록 한 것은 기존 제도를 법에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금융권도 한은법 개정안에 대해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 생·손보험협회, 저축중앙회, 여신금융협회 등 6개 금융협회 회장들은 이날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한은법 개정안에 반대하다고 밝혔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이번에 통과한 한은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은행 수지에 악영향을 미칠뿐 아니라 시장금리 인상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며 "이번 개정안국제적인 흐름에도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지급준비금에 예금만 포함돼 있는데 개정안에서는 은행채 등도 지급준비금에 포함될 수 있게 됐다"며 "국내 금융회사들만 여러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불필요한 낭비를 하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 한은 "개정안은 금융안정을 위해 꼭 필요"
반면 한국은행은 이번 개정안 통과는 금융안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개정안이 통과하기까지는 아직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어 지연 가능성도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드러냈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안정 기능 수행을 위해 매년 국회에 거시금융안정평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부담이 만만치 않다"며 "평가가 맞으면 문제 없지만 금융위기가 갑자기 닥쳤을 때 평가가 맞지 않으면 부담이 크다"며 직접 검사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더 나아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기관에 대한 긴급 여신 지원시 기재부 장관의 의견을 듣도록 한 조항 신설과 관련, "이 조항은 한은이 금융위기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논의된 한은법 개정의 취지 및 통화신용정책의 자율성과 중립성을 보장하는 현행 한은법 제3조와 배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또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이 "지급준비금 적립대상을 예금유사상품으로 확대한 조항은 한은이 금융기관을 손아귀에 넣겠다는 의도"라고 지적하자 "현실과 법의 괴리를 줄이는 장치로, 금융기관에 부담을 주려는 의도가 없다"고 반박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정윤섭 최현석 김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