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 카르텔 조사..제재수위도 높아져

기업의 부당 공동행위(담합)로 향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칼날'이 갈수록 매서워지고 있다.

올해 들어 서민 품목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담합 혐의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적발된 업체에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제재를 받는 업체들이 담합 혐의를 강력 부인하거나 정부기관의 행정지도를 따른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소송이 빈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LPG 과징금 6천689억원.."담합 관행화"
공정위는 2일 전원회의를 열고 6개 액화석유가스(LPG) 공급회사에 판매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과징금 6천689억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조사협조자(리니언시)에 대한 과징금 면제분을 감안한 실제 부과금액은 4천93억 원이다.

올해 7월 리베이트 제공 등 불공정거래 혐의로 과징금 2천600억 원을 부과받은 휴대전화용 반도체칩 제조업체 퀄컴의 기록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공정위는 E1, SK가스,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이 2003년부터 작년까지 6년간 LPG 제품인 프로판과 부탄의 판매가격을 담합해 부당이익을 챙긴 것으로 판단했다.

담합 관련 매출규모도 21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봤다.

공정위는 담합기간에 6개 LPG 업체의 판매가격에 미세한 차이 밖에 없었는데 이는 총 72회에 걸쳐 판매가격 관련 정보교환을 했을 정도로 담합이 관행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입사인 E1과 SK가스는 자신들의 LPG 판매가격을 결정한 직후 거래관계가 있는 정유사에 팩스 등을 이용해 통보해줬다.

또 LPG 공급사는 충전소에 낮은 가격을 제시하면서 거래처를 확대하는 경쟁행위를 '거래처 침탈'이라고 부르며 하지 않기로 했다.

공정위는 "LPG 업체들은 수시로 영업담당 임원급, 팀장급 모임을 갖고 판매가격 공동결정을 통한 고가유지, 경쟁자제 등에 관한 입장을 확인하면서 결속을 유지해 나갔다"며 "공정위가 확인한 모임횟수만 2003년 이후 20여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소주업체 제재임박..항공.건설.전자 전방위 조사
소주업체도 출고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이달 중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을 예정이다.

공정위는 지난달 중순 11개 소주업체에 총 2천263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개별 업체에 발송했다.

20여개 국내외 항공사들도 최근 화물운송료를 담합한 혐의로 최근 공정위로부터 제재 내용이 담긴 심사보고서를 전달받았다.

잠정 과징금 부과액이 수천억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지난 10월에는 15개 대형 건설사를 방문해 4대강 턴키공사 입찰과 관련한 자료를 요구하는 등 입찰 담합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학교와 병원 관공서 등에 대량 납품하는 시스템에어컨을 입찰 담합한 혐의에 대한 조사도 마무리 단계다.

이 밖에도 공정위는 ▲전국 200여개 주유소 ▲계절 인플루엔자 백신을 공급하는 4개 제약사 ▲이동통신사 휴대전화 요금 ▲온라인 음악사이트 운용사 ▲영화관 관람료 ▲제빵 및 우유업체 등의 담합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올해 공정위가 담합기업에 부과하는 과징금은 2003년부터 작년까지 6년 동안 부과한 금액인 1조108억 원(원심결 기준)과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 "공정위 제재 너무하다"..소송 검토
그러나 제재를 받는 기업들은 공정위가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3~4년치 이익규모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받은 LPG 업체들은 가격 담합 혐의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 LPG 가격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가 국제 LPG 가격을 통보하면, 통상 매월 말에 수입가격과 환율, 각종 세금, 유통 비용 등을 반영해 다음 달 공급가격을 결정하는 구조여서 담합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LPG 업체들은 공정위의 제재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소주업체들도 가격 인상이 국세청의 행정지도에 의한 것으로 담합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류산업협회는 지난달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소주업계는 스스로 가격 인상을 할 수 없고 국세청의 행정지도 안의 범위에서만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며 "따라서 소주가격 담합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최근 담합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받은 신평사 중 한신정평가도 "평가 수수료 체계와 관련 행정지도의 존재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반발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담합으로 소비자의 피해를 야기하는 기업을 강력히 제재한다는 것이 공정위 확고한 방침"이라고 전제한 뒤 "담합 혐의를 부인하거나 행정지도 핑계를 대는 기업들이 소송을 제기하면 법정에서 사실관계가 명백해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김호준 기자 koman@yna.co.kr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