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시행을 앞둔 복수노조 허용 및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골자로 한 노사관계법을 둘러싼 주요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두 문제를 놓고 절충안을 마련하기 위한 막바지 협상을 벌이는 가운데 정치권에서 복수노조 허용에 유예기간을 두고 전임자 임금 지급문제는 단계별로 시행하는 중재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지는 등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용자인 주요 기업들은 각자의 처지에 맞춰 '방점'을 달리하면서 두 쟁점에 대해 우려스럽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혀 관심을 끌고 있다.

경총으로 창구를 단일화해 의견을 표명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 사안에 대해 침묵을 지켰던 주요 기업 가운데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국내 최대 노조가 조직돼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1일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관련 입장'이란 성명을 발표하고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는 반드시 현행법대로 내년부터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복수노조의 허용을 3년간 유예해 2013년부터 시행할 것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규정을 노조원 1만 명 이상의 대기업에 한해 내년부터 우선 적용하고 나머지 기업에서는 유예하자는 내용의 여권 중재안에 대한 반박이었다.

이로써 `강성 노조'를 둔 현대.기아차는 사용자 측이 줄곧 반대해온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라는 2가지 쟁점 중에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셈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등 13개 중소기업 단체들도 2일 성명을 발표하고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규정을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기업은 원칙대로 법을 적용하고, 중소기업에는 적용을 유예하여 불합리한 비용부담을 지속시키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며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위해 원칙대로 법이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노조 조직이 그다지 활성화돼 있지 않은 기업들은 새로운 노조의 등장 가능성을 높이는 복수노조 허용문제 쪽에 더 큰 관심을 보이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삼성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재계의 전반적인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는 전제를 달아 "우리도 복수노조 허용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조심스럽게 견해를 밝혔다.

그는 "타협적 노사관계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복수노조가 도입되면 노조 간 세력경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러면 기업 입장에선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만 복수노조 도입이 안 됐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노사관계가 비타협적이고 투쟁적인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복수노조 허용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피력했다.

외국계 기업들도 이미 제시됐던 한국의 투자여건을 보고 들어왔는데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이 달라진다면 곤란하다며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외국인 투자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71.3%는 복수노조 설립에 반대했고, 75.7%는 한국의 노동운동 방식이 '투쟁적'이라고 평가했다.

또 복수노조가 허용되더라도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80.3%에 달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처한 상황에 따라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 문제를 놓고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전체 사용자들 간에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수 기자 jski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