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2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치의 허용 범위가 종전보다 0.5%포인트 늘어난다면 이는 향후 우리나라 경제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정부의 경기부양 수단이 줄어들고 중소기업 지원책 등 비정상적 조치가 서서히 거둬들여지는 데다 해외에서는 금융불안이 재발하는 등 `더블딥(이중침체)' 우려가 불식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목표 허용범위가 확대되면 한은 입장에서는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잡는 데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로서도 확장적 재정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여력이 늘어난 셈이다.

◇ 물가목표 허용범위 확대.."불확실성 크다"

정부와 한은이 내년부터 3년 간 적용될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목표치를 3±0.5%포인트에서 3±1%포인트로 바꾸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 같은 합의에는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매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3%로 잡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오차 허용 범위를 0.5%포인트에서 1.0%포인트로 늘려 줘 경기 회복세를 유지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정책적 운신의 폭을 넓힌 것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내년에 올해보다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반대로 세계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우려도 제기되는 등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이를 고려해 융통성 있는 통화정책을 펴겠다는 취지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오는 26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정부와 한은의 합의 내용대로 의결되더라도 종전에 비해 물가목표 범위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은은 1998년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한 이후 1999년과 2001~2003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또는 근원 인플레이션(소비자물가 품목에서 석유류와 농수산품을 뺀 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3.0±1%포인트로 적용했다.

2004년부터 올해까지는 2.5~3.5% 또는 3.0±0.5%포인트를 적용해 왔다.

한편, 정부와 한은은 현재 3년인 물가안정목표의 적용 기간을 줄이거나 늘리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적용 기간이 짧아지면 경제 상황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반면 정책이 자주 바뀌는 부작용도 있다.

물가 상승률이 안정적인 선진국들은 적용 기간을 길게 두거나 아예 기한을 두지 않는 곳도 있다.

◇금리인상 부담 덜어..확장기조 유지에 도움

물가목표 허용범위가 넓어지면 정부와 한은 모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확장적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데 따르는 부담을 한결 덜어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전세계적인 과잉 유동성 논란에다 원자재값 상승 조짐 등 때문에 내년도 물가가 불안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단 물가목표 변동폭이 커지면 인플레이션 발생시 정책당국이 감내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한은의 확장적 통화정책에 따르는 부담을 한결 덜어줬다는 시각이 강하다.

지금까지는 내년초 금리인상 단행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으나 한은 입장에서 시기를 조절할 수 있는 여유가 조금 더 생겼다는 것이다.

한은은 5.25%였던 기준금리를 작년 10월부터 내리기 시작해 올해 2월 2.00%까지 낮췄으나 부동산시장 불안 등 물가 상승 압력이 제기되자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해왔다.

하지만 정부의 경기회복 최우선 여론 등에 따라 인상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물가목표 범위가 늘어난다면 아무래도 금리인상에 대한 부담 정도가 달라지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입장에서도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의 유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경제위기 탈출과 경기회복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는 정부로선 확장정책 유지의 최대 압박요인 중 하나였던 물가 상승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물가가 2% 후반대에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설령 내년 이후 인플레이션 압력이 생기더라도 확대된 변동폭이 물가인상시 제기될 수 있는 긴축기조로의 전환 압박을 어느 정도 흡수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한은이 물가목표 달성에 따른 부담을 덜어주고 정부 역시 확장적 기조를 당분간 유지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다만 금리인상 시기는 한은이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 물가안정목표제란

한은은 과거 시중 통화량(M2ㆍ광의통화) 증가율을 통해 경기를 조절했다.

경기가 냉각되면 통화량을 늘리고, 반대로 과열되면 통화량을 줄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선진국들이 통화량 대신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했고, 우리나라도 1998년부터 물가안정목표제를 통화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다.

금융시장이 발달하면서 통화량을 조절하기보다는 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정하고 그에 맞춰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내려 통화량을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게 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은은 1998~2003년 1년 단위로 물가안정목표를 발표했다.

첫해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9.0±1%포인트로 적용했다.

이후에는 보다 긴 안목에서 통화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 3년 단위로 물가안정목표를 발표하기 시작해 2004~2006년 2.5~3.5%(근원 인플레이션)를 목표치로 정했고, 2007년부터는 다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기준으로 삼았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류지복 홍정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