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일본 애니메이션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2001년 발표한 이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소프트 파워'를 상징한다. 2002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인 황금곰상,2003년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을 휩쓸며 애니메이션을 일본의 간판 문화상품으로 올려놓았다. 1970년대부터 '우주전함 야마토' '은하철도 999' 등 해외에서 인기를 끌어온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일본식 발음인 '아니메(Anime)'로 불리며 그동안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본의 아니메가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경기가 악화된 데다 주요 소비고객인 젊은층 인구가 급속한 고령화로 줄어들어 수요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 중국 등이 상대적으로 싼 임금을 무기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본격 뛰어들면서 일본의 아니메 산업은 빛이 바래고 있다.

일본 동영상협회에 따르면 일본 국내에서 방송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은 2000년 124편에서 2006년에는 306편으로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288편으로 줄었고,올해 4월 봄철 프로그램 개편 이후 새로 방송하는 애니메이션도 30편대로 2006년 60편대의 절반 정도로 감소했다. 일본 영상소프트협회가 집계한 일본 애니메이션 DVD의 국내 매출은 2005년 971억엔에서 2006년 950억엔,2007년 894억엔,2008년 779억엔으로 갈수록 줄고 있다. 해외 시장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캐릭터를 포함한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는 2003년 48억달러를 정점으로 2007년 28억달러로 축소됐다.

일본 내에선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로 애니메이션 수요층 자체가 줄고 있는 게 문제다. 유튜브 등 무료 동영상의 확산과 인터넷을 통한 불법 복제도 애니메이션 시장을 갉아먹고 있다.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이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만화가들은 저임금 중노동에 내몰리는 형편이다. 텔레콤 애니메이션필름이란 프로덕션에서 만화가로 일하는 오타니 리에씨(22)는 하루 13~14시간씩 스케치 작업을 하고 고작 10만엔(약 13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도쿄에선 극빈 생활 수준이다. 일본 20대 만화가의 연봉은 평균 110만엔(1430만원)에 불과하다.

저임금 직업으로 전락한 애니메이션 산업에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모이지 않는 건 당연하다. 애니메이션 만화가 10명 중 9명은 3년 내에 일을 그만둔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이들은 대부분 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비디오게임업계로 이직한다. 텔레콤 애니메이션필름의 다케우치 고지 사장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이들이 꿈에 그리는 일터였다"며 "그러나 지금은 기피 직장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젊은 만화가들의 이탈은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미래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애니메이션 감독인 야마자키 오사무씨(47)는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는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은 앞으로 점점 창의성과 유연성을 잃어 경쟁력을 상실할 것"으로 우려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