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주식시장의 시선은 온통 삼성전자가 발표할 3분기 영업이익 규모에 집중됐다. 다행히 4조2300억원이라는 '깜짝 실적'을 발표하자 삼성전자 주가는 코스피지수를 압도하는 강세흐름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증시에서는 '기업실적=영업이익'이라는 등식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삼성전자가 실적을 내놓아도 영업이익이 얼마인지 알기 힘든 당황스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새 국제회계기준인 IFRS에서 영업이익의 산출을 의무화하지 않고 있어서다. 삼성전자가 투자자들의 편의를 고려해 영업이익을 발표하더라도 어떤 기준으로 계산됐는지를 일일이 분석하는 복잡한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풀무원홀딩스 상반기 영업이익 종전보다 3배 수준으로 불어나

이 같은 우려는 2011년 IFRS 의무도입에 앞서 올해 조기도입한 13개 회사들의 결산실적 결과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이들의 상반기 결산보고서를 리스크컨설팅코리아와 공동으로 분석한 결과 핵심정보가 상당수 누락되고 과도하게 자의적으로 작성돼 회계장부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핵심 재무지표인 영업이익의 산정방법이 제각각이어서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건산업과 디스플레이테크는 대부분의 투자자가 가장 중요한 지표로 꼽는 영업이익을 아예 기재하지 않았다. 해당회사 실무자들은 "IFRS에서 영업이익 산출을 의무화하지 않고 있어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의 의견을 듣고 고민 끝에 표기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본업인 영업활동의 성과를 가장 잘 보여주는 항목이 영업이익이고 투자판단시 순이익이나 매출증감보다 더 중요한 데이터로 간주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누락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나머지 11개사는 영업이익을 기재하긴 했지만 산출방식이 제각각이어서 비교가 어려운 것으로 지적됐다.

KT&G와 풀무원홀딩스를 포함한 5개사는 배당금 잡손익 외화환산손익 등 현행 회계기준에서는 영업외의 이익으로 분류하는 손익을 영업이익에 포함시켰다. 현행 기준대로 영업이익을 계산한 회사는 코스모화학,한국큐빅,인선이엔티,에코에너지코리아홀딩스,국제엘렉트릭코리아,다스텍 등 6곳에 그쳤다. 이에 따라 풀무원홀딩스의 경우 예전 회계기준에 따르면 반기 영업이익이 9억7300만원이지만 IFRS 방식에선 27억7400만원으로 3배 가까이 불어났다.

계정과목 분류기준도 제각각

영업이익과 함께 기업가치 평가 때 주요 지표로 활용하는 현금흐름 역시 종전과는 달리 영업활동과 관련된 것인지를 판단하기 힘들어졌다. 유출입되는 현금을 처리하는 방식이 기업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KT&G 등 4개사는 '이자수입'을 본업인 영업과 관련 없는 투자활동으로 분류한 반면 코스모화학 등 7개사는 영업활동에 포함시켰다. '지급이자'로 유출된 현금도 STX팬오션 등 10개사는 영업활동으로,영진약품 등 3개사는 재무활동으로 다르게 표기했다.

보유한 유가증권에서 받은 배당금의 분류방식도 다르다. 이건산업은 영업활동으로 파악한 반면 KT&G 인선이엔티 에코에너지코리아홀딩스 등은 투자활동으로 분류했다. IFRS를 조기 도입한 회사를 담당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영업 현금흐름을 잘 파악하는 것이 적정주가 산정에 중요한데 IFRS 현금흐름표로는 이를 정확히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IFRS의 큰 장점인 상세한 주석표기도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주석의 양적 분량은 종전의 2배 정도로 늘어났지만 질적인 측면에선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예컨대 STX팬오션과 국제엘렉트릭코리아는 예전 회계기준에서는 표기해야하는 차입금명세를 누락했고,STX팬오션 · 이건산업 · 다스텍 · 국제엘렉트릭코리아 등은 판매관리비를 항목별로 구분하지 않았다.

'투자자의 무덤' 방지할 보완책 시급

이 같은 혼선과 부실은 재무제표 작성방식을 명문화한 '규정 중심'의 현행 기업회계기준과 달리 IFRS는 큰 틀만 정하고 구체적인 기재방식은 기업에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원칙 중심'이라는 점을 회계법인과 기업들이 간과하거나 악용한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한 연구소 관계자는 "기업의 실체를 왜곡하는 나쁜 재무제표들이 양산될 수도 있다"며 "정보 이용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완조치를 서두르지 않으면 IFRS는 자칫 '투자자들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KT&G를 담당하는 한 애널리스트는 "영업이익률 등을 예전 실적과 단순 비교하기 어려워 기업분석에 애를 먹고 있다"며 "특히 IFRS방식의 과거 시계열 데이터가 없어 실적을 연속선상에서 판단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3개사와 LG전자 등 LG그룹 10개사가 내년부터 IFRS를 도입할 예정이어서 이 같은 문제점이 시정되지 않으면 시장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서정우 한국회계기준원 원장은 "당분간은 비교가능성이 낮아지는 등의 문제가 예상된다"며 "정부와 회계업계 기업이 합심해 조기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칫 회계대란으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려면 국내 가이드라인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대표는 "IFRS의 국제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경제단체,공인회계사회,전문가 등이 나서 통일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금환 금감원 회계제도실장은 "프랑스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운용하고 있지만 국제적인 기준을 따라야 하는 만큼 현재로선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백광엽/조재희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