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국가들이 핫머니(국제 투기자금) 유입을 억제하기 위한 고강도 대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고수익을 찾아 몰려드는 핫머니로 인한 자산 거품과 급격한 통화가치 상승을 우려해서다. 이머징 국가들에선 미국이 지난해 말 이후 제로금리(연 0~0.25%)와 통화팽창 정책을 펴면서 달러 캐리 트레이드(저금리 달러를 빌려 고금리 통화자산에 투자) 자금이 대거 유입돼 자국 내 자산 거품을 키우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통화가치 상승은 원자재 수출국 등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토빈세'도입 이어지나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시아는 핫머니 유입이 루블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을 막기 위해 '토빈세'(투기자금 억제를 위해 국제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 도입을 포함한 대책을 강구 중이다. 알렉세이 울류카예프 러시아 중앙은행 제1부총재는 이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우리는 '토빈세'와 같이 국경을 넘나드는 자금 거래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어떤 수단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 가치의 급격한 상승을 막기 위해 지난달 이후 약 210억달러 규모의 외환을 사들였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루블화 가치는 지난 9월 이후 달러화 대비 10%가량 상승했다. 러시아의 토빈세 도입 움직임은 브라질 대만 등 이머징 국가들이 핫머니 유입을 우려해 외화자금 유입 억제 대책을 잇따라 마련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브라질은 지난달부터 헤알화 표시 채권과 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에 2%의 거래세를 부과하고 있다. 과도한 외화자금 유입이 헤알화 가치를 끌어올려 수출에 압박을 주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브라질은 또 19일부터는 자국 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하는 주식예탁증서(DR) 거래에 대해서도 1.5%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해외 DR 발행과 거래에 따른 달러화 유입을 차단해 헤알화 강세를 막겠다는 의도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지난달 금융거래세 도입 이후 외국인 투자가 하루 평균 9억8000만달러에서 3억800만달러로 감소했다고 전했다.

대만은 최근 핫머니 유입 억제를 위해 해외 자금이 자국 내 은행에 정기예금 형태로 예치되는 것을 금지했다. 또 인도와 인도네시아 태국은 외화자금 유입 통제를 강하게 시사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애쇼크 샤왈라 인도 재무장관은 "외국인 투자가 급증한다면 자본 유입 속도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르타디 사르워노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부총재는 "외국인들의 단기 은행채 매입 제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언급했고,타리사 와타나가세 태국 중앙은행 총재는 "필요시 바트화에 대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국 언론들은 중앙은행이 이미 자본 통제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도 국내 은행들이 자본 유입에 덜 취약하게 하기 위해 외화유동성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자본 통제 효과는 논란

HSBC의 데이비드 블룸은 "최근 브라질과 대만의 조치는 이머징 정부들이 서방국가의 지속적인 자본 포트폴리오 재분배와 이것이 유동성과 환율에 미치는 영향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브라질과 대만에선 외환 통제 조치 이후 자금 유입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인도와 인도네시아 태국에선 당국자들의 발언 이후 통화가치가 급락하는 등 외환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장기적인 효과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실제로 말레이시아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자본 유입 제한을 통해 상대적으로 면역력을 가질 수 있었지만 태국은 2006년 정치위기 상황에서 자본 유입을 통제했다가 증시가 폭락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

토빈세=198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 미국 예일대 교수가 주장한 이론으로,외환 · 채권 · 파생상품 등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핫머니에 거래세를 부과해 급격한 자금 유출입으로 통화위기가 촉발되는 것을 막자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일부 국가에서만 실시할 경우 국제자본이 토빈세가 없는 곳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높아 현재까지 활성화되진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