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 10개월째로 접어든 가운데, 금융권역 간 영역다툼이 이중삼중으로 확산하며 과열되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법 제정 취지를 등한시한 채 돈 되는 부수업무 확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금융권역간 장벽을 허물어 자본시장 빅뱅(대폭발)을 통한 대형투자은행 탄생을 위해 올 2월 자통법을 내놨다.

그러나 자통법 시행 이후 주요 증권사들이 은행 고유업무인 지급결제 업무를 도입하자, 은행과 증권사 간 경쟁은 '수수료' 분쟁으로 비화했다.

또 보험사들도 지급결제 업무를 넘보며 1년 넘게 은행과 대치하면서, 국회를 들락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지급결제'업무를 놓고 금융기관들이 출혈적인 밥그릇 싸움에만 치중해 법 시행 효과를 반감시키고 전반적인 시장시스템 리스크만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은행-증권 영역다툼 과열
1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결제원은 지난 6일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기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자동화기기 보유 대수에 따른 현금지급기(CD) 수수료 차등화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수수료 차등화에 반대하는 증권사들이 대거 불참해 회의를 못했다.

증권사들은 자동화기기 보유대수별로 CD 수수료를 차등화하는 것은 사실상의 CD 수수료 인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결제원은 그러나 조만간 다시 회의 소집일을 정해 수수료 차등화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그러나 증권사들은 사원기관인 은행들 중심으로 진행되는 관련회의에 들러리를 설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이번에도 회의가 열릴지는 미지수다.

이같은 은행과 증권 간 수수료 분쟁은 은행들이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카드와 은행카드 간 수수료 차별화를 추진하며 공정거래위원회에 가능 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하면서 불이 붙었다.

공정위는 수수료를 업종별로 차등화하는 것은 안 되지만 CD 보유 대수별로 차등화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그러나 증권사들은 현재 건당 450원인 CD 수수료를 CD기 대수에 따라 차등화하는 것은 CD기 대수가 80배나 많고 이용 고객이 압도적으로 많은 은행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치라며 크게 반발했다.

현재 은행권이 보유한 현금지급기는 4만8천대에 달하지만 증권사들은 500대에도 못 미친다.

◇은행-보험도 충돌…보험 지급결제 물 건너가나
또 은행과 보험권은 보험사에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문제를 놓고 1년 넘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은행에서는 보험에 지급결제 기능을 허용하면 금융시스템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반면 보험에서는 증권사와 저축은행도 지급결제 업무를 취급하는 상황에서 보험만 위험하다며 막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반박했다.

일단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보험업 지급결제 허용을 포함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상정을 할 계획이나 보험업계의 소원이 성취되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일단 개정안을 상정해 논의하고 내달 초 공청회도 열 예정"이나 "원안대로 통과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영역다툼에 불이 붙은 은행과 보험권은 최근에는 보험이 주도권을 잡은 퇴직연금 시장에서도 충돌했다.

보험사들이 장악하고 있던 퇴직보험시장이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은행들이 치고 들어오자 보험사들이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
퇴직연금 시장에서는 삼성생명이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2∼6위까지 모두 대형 시중은행들이 자리 잡고 있다.

보험사들은 은행이 대출과 연계하는 '꺾기'라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으며 제도상으로도 보험업종이 불리한 점이 많다고 성토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퇴직연금관련 금융기관들의 불공정·과당경쟁이 심화하고 있어 운영 실태를 점검키로 했으며 금융위원회에서도 불합리한 규정에 대해 살피고 있다.

◇ '금융권 밥그릇 싸움'에 금융소비자 리스크 노출
금융권역간 영업다툼이 가열되자 금융소비자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소비자의 권익보호 등에는 소극적인 금융기관들이 영토 싸움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금융권이 밥그릇 싸움에만 치중함에 따라 금융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순기능에 대한 기대감보다 오히려 전체 시장시스템이 리스크에 노출돼 결과적으로 금융소비자의 피해만 양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금융회사들이 소비자의 편익을 증진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돈 되는 부수업무를 갖는 데만 혈안이 돼 자본시장 빅뱅을 위해 제정된 자통법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 교수는 "다른 금융권의 금융기관들이 은행처럼 규제를 받지 않으면서 은행업을 하게 되면 많은 규제차익을 누릴 수 있으나, 광의의 소비자들에게는 커다란 위험에 노출되는 문제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최윤정 최현석 기자 indigo@yna.co.krmerciel@yna.co.kr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