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도 쌀 농사가 대풍년이 든 것으로 나타나면서 정부의 쌀 재고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소비는 갈수록 주는데 풍작이 거듭되면서 되레 쌀 소비 문제로 고민해야하는 역설적 상황이 된 것이다.

쌀의 공급 과잉은 특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도 얼마든 반복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여서 근원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쌀값 하락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시중의 재고량 파악이나 수확량 예측 등이 잇따라 빗나가면서 혼란을 키웠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정부, 연거푸 '실책'
15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정부는 8월 11일 국무회의에서 쌀 10만t 매입을 의결했다.

통상 수확기(10∼12월)에 저점을 찍은 뒤 반등해야할 쌀 가격이 이후로도 계속 하락하자 쌀값 안정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농협중앙회가 시중에서 쌀을 사들여 창고에 보관한 채 유통시키지 않는 '시장 격리'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런데도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다.

갑자기 시중의 쌀 재고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가가 나중에 팔려고 보유하고 있던 쌀이 추가로 시장에 나오면서 당초 파악되지 않았던 쌀 재고가 더 있었다"고 말했다.

재고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처방이 내려졌던 셈이다.

보통 수확기 이후엔 쌀값이 오르기 마련이어서 농가들이 나중에 좀 더 높은 값에 팔려고 쌀을 일부 보관해두는데 이를 감안하지 못한 것이다.

올해 쌀 생산량을 두고도 정부 예측이 빗나가면서 또 한 차례 혼란을 빚었다.

지난달 10일 통계청은 올해 쌀 생산량이 468만2천t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고 농식품부는 이를 토대로 수요 초과분에 해당하는 쌀 11만t을 시장 격리 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또 앞서 9월 말 당정협의를 한 뒤 올해 수확기 쌀 매입량을 늘리겠다고 발표하면서 "지금의 쌀값 불안은 심리적 요인이 더 크다"고 밝혔다.

생산량이 많은 것이 아닌데도 부풀려진 불안감 탓에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그러나 12일 나온 최종 쌀 생산량은 대풍이었다는 작년(484만3천t)보다도 7만3천t 많은 491만6천t에 달했다.

결국 쌀값 하락은 실제 과잉 생산 때문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정부는 통계청의 쌀 생산량 예측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검토에 나섰다.

◇ 쌀 재고관리엔 '빨간 불'
쌀 잉여 생산분을 정부가 모두 떠맡으면서 재고 관리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정부는 일단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이 생산된 올해 수확한 쌀 23만t을 모두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하기로 했다.

매입 비용은 3천억원 정도다.

애초 격리시키기로 한 물량 11만t을 합치면 시장 격리 물량만 34만t에 달한다.

여기에 올해 사들이기로 한 공공비축미곡 37만t까지 합치면 사실상 정부가 사들이는 물량이 71만t에 이르게 된다.

정부가 당초 예상한 양곡연도 말(10월 말) 기준 쌀 재고 82만t을 감안하면 쌀 재고가 150만t을 웃돌게 된다.

물론 이 중 일부는 주정용 등으로 처분되므로 실제 재고 규모는 이보다는 적다.

문제는 이 쌀의 소비 방안이 마땅히 없다는 점이다.

당장의 쌀값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쌀을 사들였지만 상당 기간 창고에 그대로 묵혀둘 수밖에 없다는 데 정부의 고민이 있다.

쌀 가공산업 활성화로 쌀 소비를 촉진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장기적인 성과를 기대해볼 처방이다.

단기적으로 쌀 소비량을 급격히 늘리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막걸리 수출과 소비가 늘고 있다지만 작년 한 해 막걸리 생산에 쓰인 쌀은 1만5천t에 불과했다.

두 배로 늘어도 3만t 수준이다.

재고가 늘면 쌀 보관 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의 소비 확대 방안을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다"며 "쌀의 공급 과잉이 구조적인 문제로 자리잡은 만큼 벼 농가가 다른 작물을 심도록 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