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포이즌필(poison pill)' 도입을 추진함에 따라 기업들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기업역량을 낭비하는 일을 덜게 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주주총회의 특별 결의로 정관을 변경해 신주인수선택권을 도입할 수 있고, 이후 적대적 M&A 상황이 벌어지면 이사회 결의만으로 신주인수선택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포이즌필을 도입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에 대해 공청회를 개최했다고 9일 밝혔다.

이번 포이즌필 도입은 재계의 숙원사항이었다.

소버린과 SK, 아이칸과 KT&G간 경영권 다툼을 겪으면서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중심으로 재계에서 포이즌필 도입을 요구해왔던 것.

외환위기 이후 M&A 활성화 차원에서 적대적 기업 매수행위 규제가 완화됐으나 기업들의 방어행위에 대한 규제는 여전해 경영권을 두고 공격자와 방어자간 불공정한 경쟁환경이 지속되고 있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특히 자본시장 개방으로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대기업의 지분을 사들임에 따라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설이 심심치 않게 제기됐었다.

국내 기업 입장에선 적대적 M&A에 대해 자사주 매입 이외의 유효한 방어수단이 없어 2008년 1월말 현재 상장사들의 자사주 매입규모가 64조원에 달했다.

자사주가 전적으로 M&A 대응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지만, 수십조원에 달하는 현금이 비(非)생산적인 곳에 묶여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적대적 M&A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마련한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국내 기업의 상대적 차별이 두드러진다.

미국은 법률상 근거나 정관의 규정 없이도 이사회의 권한으로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포이즌필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단 그 적법성 여부는 사후적인 사법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포이즌필 도입을 용이하도록 지난 2005년 신회사법을 제정했으며, 프랑스는 2006년 상법 개정으로 주식인수증권 제도를 도입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포이즌필 도입으로 증시 전반으로 디스카운트 요인이 될 수 있겠지만, 기업 보유 현금이 생산적인 곳에 투자된다면 중장기적으로 주주 가치는 올라가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증권 김성봉 연구원은 "주주 가치를 올려주는 요인인 경영권 프리미엄은 M&A 시 주가에 반영되기 마련인데, 포이즌필을 도입한 기업은 이런 경영권 프리미엄을 기대하기 어려워 주주 가치에 부정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적대적 M&A를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등 경영권 방어 비용이 생산시설 투자나 마케팅 등 생산적인 기업활동에 쓰인다면 중장기적으로 주주 가치는 상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pseudoj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