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을 보는 금융감독당국의 시각이 바뀌고 있다. 작년 초만 해도 금융산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대대적인 규제 완화 작업을 추진했다. 130여건의 개혁 과제가 선정됐다. 은행법과 보험법 등 금융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오는 16일부터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심의가 시작될 예정이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산업의 건전성 강화가 제1의 과제로 떠오르면서 정책 방향이 유턴할 조짐이다.

◆인터넷은행 · 금융상품 판매 회사 보류

각국의 느슨한 금융감독과 금융인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정책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최근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도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가장 먼저 수술대에 오른 게 인터넷 전문은행과 금융상품 판매전문회사다. 인터넷 전문은행이란 점포망 없이 인터넷과 콜센터,자동화기기(CD,ATM)를 활용해 처리하는 무점포 은행으로,예 · 적금과 대출 등 일반 소매영업만을 영위하는 곳이다. 현재 미국 영국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 허용돼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은 수익모델이 취약해 조기 부실화될 우려가 있고 제대로 시스템 보안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의문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스위스 솔로몬 한국저축은행 등 인터넷전문은행을 준비해 온 대형 저축은행들은 크게 실망하고 있다.

금융상품 판매전문회사(금융백화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금융백화점은 예 · 적금과 보험 펀드 신용카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한곳에서 팔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여러 브랜드의 다양한 전자제품을 모아 둔 '하이마트'와 같은 금융업계의 양판점인 셈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6월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4차 회의에서 2010년부터 '금융상품 판매전문회사'를 허용하겠다는 '금융 규제 개혁 기본 방향 및 진입규제 개선 방안'을 보고했다. 그러나 금융위 관계자는 "대형 시중은행들도 보험,펀드 불완전판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판매전문사가 모든 금융상품을 한꺼번에 모아 팔 역량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어 추진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 지급결제 허용도 재검토

금융 관련 법안 중 '뜨거운 감자'는 보험법이다.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은 보험사 지급결제 허용,보험판매전문사 도입 등과 함께 보험사의 겸영 · 부수 업무 확대,자산 운용 · 상품 규제 완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위는 보험사 지급결제 허용에 대해 이번 회기 내에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입장에서 사실상 한발짝 물러났다. 은행들이 보험사가 지급결제에 참여할 경우 안정성이 떨어진다며 거세게 반대하고 있어서다. 정무위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인 이사철 한나라당 의원실 관계자는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보험사 지급결제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 땅을 좀 잃었다"며 "논의 과정을 거쳐 법안의 대폭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급결제 허용을 계기로 고객서비스를 대폭 확대하려는 보험업계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험법에는 지급결제 허용이나 보험판매전문사 문제뿐 아니라 여러가지 시급한 과제가 담겨 있다"며 "업계가 합의하지 못하면 논쟁 사안을 제외하고 처리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의 금융정책 유턴이 자칫하면 금융산업을 후퇴시킬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다른 나라들이 주춤하는 지금이 금융산업을 키울 수 있는 호기인 만큼 규제 강화로 방향을 돌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위기를 막기 위해 건전성을 높여야 하지만 한국 금융산업은 여전히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규제를 받고 있다"며 "금융산업을 제조업을 지원하는 보조산업이 아닌 그 자체로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