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골프 GTD' 시승기

우연일까. 폭스바겐의 '골프'를 타게 되는 날에는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지난 9월 국내에 출시된 '6세대 골프' 시승회는 5일(현지시간) 빗속에서 진행됐다. 독일 현지로 날아와 만나게 된 '골프 GTD'도 빗속에서 전조등을 깜박이고 있었다.

다만 이번 시승에선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일정구간 '속도 무제한'인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이 이 차의 성능을 시험하는 첫 무대라는 것. 고성능을 전면에 내세운 골프 GTD의 테스트로는 절호의 기회다.

내년 초 국내 출시예정인 골프 GTD는 '해치백의 교과서'라 불리는 폭스바겐 골프의 고성능 버전이다. 지난해 독일 현지에서 6세대 골프가 출시된 후 뒤를 이은 다양한 파생모델들 중 특히 주목받는 차량이다. 유지비가 낮은 디젤엔진을 탑재했으면서도 여느 스포츠카에 못지 않은 고속주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원을 보면 ℓ당 18km(자동변속기 기준.유럽 공인연비)를 주행하는 높은 연비효율과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이르는 데 단 8.1초가 소요되는 강력한 가속성능이 돋보인다. 최대출력은 170마력, 최고속도는 시속 222km다.

외관에도 많은 변화가 있다. 차량 높이를 기존 골프보다 15mm 낮췄다. 공기저항계수를 줄여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17인치 알로이 휠을 탑재했으며 세밀하게 조정된 차량바닥 충격흡수장치(서스펜션)는 역동적인 고속주행에 최적화됐다.

차량에 탑승해 내부를 둘러봤다. '골프 GTI'에도 탑재됐던 '탑 스포츠 시트'는 운전자의 옆구리를 단단히 감싸준다. 고속 주행 중 코너링에 들어서면 생기는 몸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운전대(스티어링휠)는 아랫부분이 평평하다. 레이싱카의 운전대와 흡사한 모양이다. 눈에 쉽게 들어오는 계기반과 깔끔하게 배치된 다양한 버튼들은 이 차가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는 점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키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 시동소리는 신속하고 묵직하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시승거리는 독일 동부 드레스덴에서부터 폭스바겐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까지인 426km, 만만치 않은 거리다. 그러나 아우토반을 달린다는 기대감은 장거리 운전에 대한 부담을 순식간에 날려 보냈다.

조심스레 차량을 출발시켰다. 드레스덴의 시가지를 벗어나 아우토반에 들어섰다. '이제부터 진짜다'라는 기분이 든다.

가속페달에 올려둔 발에 최대한 힘을 줬다. 눈앞을 가로막는 차는 보이지 않는다. 탁 트인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GTD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제한속도 해제를 알리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더는 망설일게 없다. 가속페달을 최대한 깊숙이 밟아 눌렀다. 속도계는 숨 가쁘게 올라간다. 옆 유리창에 비춰진 동독의 정경은 빠르게 흐려진다.

이윽고 시속 200km까지 순식간에 도달하자 창밖에서는 기분 좋은 배기음이 들려온다. 차량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허락하는 이 도로가 선사하는 '절정'을 마음껏 느낀다. 그렇게 자동차와 운전자는 아우토반을 가르는 바람이 되어간다.

주저하지 않고 속도를 높여가던 GTD는 시속 220km를 넘어서자 숨을 고른다. 목적지인 볼프스부르크까지 40여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그새 아우토반을 달리는 차들의 수도 불어났다.

스포츠 모드로 맞춰져 있던 서스펜션 세팅을 '컴포트(Comfort)'로 바꾸고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시가지로 들어선다. 역동적인 주행성능을 내세운 모델이지만 승차감도 제법 안락하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며 볼프스부르크 폭스바겐 공장이 눈앞에 다가온다. GTD는 자신에게 허락된 최고의 속도로 전력을 다해 기자를 자신이 태어난 고향까지 데려다줬다. 1리터의 경유로 20km를 달려 주머니도 가볍다. 이 차는 내년 초 한국으로 달려올 예정이다.

볼프스부르크(독일)=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