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동부 작센주(州)의 주도 드레스덴.

신성 로마제국 최초의 왕조였던 9세기 작센 왕조의 숨결이 잠든 고성(古城)들이 숲을 이룬 이곳에는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21세기의 '또 다른 성'이 자리한다.

드레스덴 공항에서 4번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30여분을 달리다 보면 구 동독 특유의 고색창연한 색채를 띤 도시가 등장한다.

수백년은 족히 돼보이는 건물들 사이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현대적인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독일 자동차의 '자존심' 폭스바겐이 내놓는 최고급모델 '페이톤'이 만들어지는 '투명유리공장'을 찾았다.

공장 주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카 타워(Car Tower). 새 주인을 기다리는 280여대의 차들로 메워진 높이 40미터의 유리성이다.

이 공장 외부는 모두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각자의 색을 띄고 있는 신차들을 밖에서 볼 수 있다. 이날 독일 동부 전역에 흩뿌려진 빗방울은 유리창을 타고 흘러 색색의 차들과 어우러졌다.

현지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을 상대로 모든 시설을 개방한 이 '투명유리공장'은 지난 2001년 완공됐다. 숱한 문화재들과 유서 깊은 건물들이 자리한 이 도시에 자동차 공장 설립이라는 사실 어울리기 쉽지 않은 기획이었다고 공장 안내인은 설명했다.

공장 안에 들어섰다. 내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공장은 지금껏 관념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온 ‘공장’과는 그 외견을 달리 한다. 단풍나무 원목이 깔린 바닥 위로 흐르는 클래식 음악, 그 사이에서 춤추듯 자동차를 조립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예술품이 빚어지는 '공방(工房)'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의 조립라인 근로자들은 기름때가 낀 작업복 대신 새하얀 가운을 입고 일한다. 할당된 업무에 따라서 때로는 혼자, 때로는 두, 세명이 한 조를 이루어 일한다. 손끝은 섬세하다. 표정은 활기차다. 그들을 둘러싼 관광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에 집중한다. 신명나는 모습이다.

이들 사이로 컨베이어 벨트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반조립 상태의 차들을 실어 나른다.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지 않으면 움직이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느리다. 전체 조립공정의 90% 이상을 수제작업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생산되는 차량은 고작 24대 정도다.

차가 제 모습을 찾아가는 장면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백미는 차체와 동력계통 플랫폼(뼈대)이 합쳐지는 모습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이 과정을 가리켜 마리아주(Marriage·결혼)라고 부른다. 두 개의 부품이 합쳐지며 차의 일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창 너머로 비춰진 이들의 '합방'을 숨죽여 지켜봤다. 신혼부부의 첫날밤을 엿보는 기분이다. 문득 떠오른 "이혼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짓궂은 질문에 공장 안내인은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고 받아쳤다.

드레스덴(독일)=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