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코리안 서프라이즈'였다. 굵직한 글로벌 기업들이 실적 악화에 시달릴 때, 한국 기업들은 경기 악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적 상승이라는 기염을 토해냈다. 경기침체라는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우리 기업들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일각에서는 환율이라는 대외요소를 꼽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외환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인적 구조조정 대신 인재양성이라는 히든카드로 내실을 다져온 것이 더 강해진 우리 기업들의 성공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코리안 서프라이즈를 만들어낸 한국 기업들의 인재양성,그 비밀을 들여다보자.


◆사업은 조정해도 감원은 없다

올초만해도 제조업을 중심으로 국내 기업들은 대대적 휴업에 들어갔다. 하루라도 가동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반도체와 LCD(액정표시장치) 생산라인까지도 멈춰섰다. 물건을 만들어 낼수록 적자를 보는 것도 이유였지만 그 속내에는 '일자리 나누기'라는 전략이 깔려있었다. 기업실적이 악화됐다고 하루 아침에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 경기가 활황세로 돌아섰을 때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판단이 밑바탕에 깔려있었다.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국내 대표기업들은 공장 가동일수를 줄이더라도 사람을 내보내지 않으며 핵심인력을 유지해나갔다.


대신 불황을 이겨내기 위한 사업조정은 과감히 단행했다. 삼성전자는 아예 사업체제를 TV와 휴대폰 등을 중심으로 한 완제품(DMC부문)과 반도체와 LCD 등의 부품(DS부문)으로 이분화했다. 중복사업은 과감하게 정리했다. LG전자 역시 수익성이 떨어지는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 생산라인을 태양전지 사업을 할 수 있는 라인으로 전환했다.

◆미래 인재를 입도선매하라

각종 출장수당과 경비는 줄였지만 미래 인재를 위한 투자는 아끼지 않은 것도 우리 기업들의 성공요인 중 하나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아우디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던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해 기아차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경험을 되살렸다. 인재들을 선발하는 것은 국적과 문화를 따지지 않고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중국과 인도, 러시아 등을 넘나들며 전략적으로 인재를 끌어 모았다.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는 올해부터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인재를 끌어안기 위해 3년간 총 100명 이상의 인턴을 선발해 각국에 배치하기로 했다.

한화그룹은 2004년부터 해외현지 채용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대중공업은 '현중장학생제도'를 통해 우수 학생을 캠퍼스 단계부터 입도선매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LG전자는 아예 미래 경영자 양성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전 세계 임직원 8만명을 대상으로 나라별 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본사교육을 실시해 경영자 후보군으로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인재교육에 불황 돌파의 답이 있다

외부 인재 수혈에만 힘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내부 역량을 높이기 위해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도 과감히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보편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은 어학교육이다. STX는 다양한 어학교육 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1년에 두 차례에 걸쳐 대리급 이상 해외 관련 업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문경에 있는 연수원에서 3주간의 합숙을 진행한다. LS전선은 전 사원을 대상으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국내에서 기초 4주를 마친 뒤 해외 현지에서 4개월간 어학연수를 받을 수 있다. 또 해외 현지 법인에서 실제 업무를 통해 어학실력을 키우는 인텐시브 과정까지 마련해놓고 있다.

MBA 과정 지원도 다양하다. 대한항공은 2003년부터 임원들을 대상으로 서울대 경영대와 함께 MBA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임원들에게 필요한 체계적인 경영이론 등을 가르친다. 금호아시아나는 1990년부터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에 '금호아시아나 MBA'과정을 개설해놓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현재까지 2200여명의 직원들이 거쳐갔다. 금호아시아나는 정식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해외 MBA 지원과 국내 전문MBA 과정도 지원하고 있다.

◆인사정책 변신에 '놀이형'일터까지

삼성전자는 외국인 채용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인사정책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나섰다. 2020년까지 4000억달러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비전 선포와 함께 여성인력 채용을 늘리고 외국인 채용 비율을 과감하게 높여나가겠다는 전략도 발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업장을 '일하기 좋은'일터로 바꾸기로 했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이 대표적인 모델이다. 삼성전자는 딱딱한 정장에서 벗어나 비즈니스캐주얼을 입은 직원들이 마치 공원 같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수원사업장을 단계적으로 변화시키기로 했다.

포스코는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를 '놀이방'처럼 개조했다. 1000여권의 책이 비치돼 있어 언제라도 원하는 책을 찾아볼 수 있는 북카페 및 음악과 미술감상을 할 수 있는 테이블 형태의 터치스크린, 악기연주를 할 수 있는 브레인 샤워룸 등이 들어섰다. 포스코 관계자는 "놀이를 통해 기존 사업을 재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창의적인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